이맘때 사람들의 춘심을 자극하는 것은 매화다. 매화 하면 섬진강변에 자리 잡은 광양 매화마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광양 매화마을 못지않은 매화 명소가 있다. 바로 경남 양산 원동마을이다. 광양 매화마을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친 반면 원동마을은 입소문으로 영남을 대표하는 매화 명소의 입지를 다졌다. 광양 매화마을이 아역 출신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배우라면 원동마을은 단역에서 시작해 스타가 된 연기파 배우인 셈이다. 올봄, 만개한 매화 아래서 화사한 봄의 정취를 즐기고 싶다면 원동마을로 떠나보자.
◆순매원
원동마을은 최백호가 노래한 '영일만 친구'의 실제 모델인 홍수진 시인의 고향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강을 따라 달리는 경부선 철길, 그리고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매화가 연출하는 동화 같은 풍경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양산 물금역에서 원동역을 거쳐 밀양 삼랑진역에 이르는 18㎞의 낙동강변 철길은 일찌감치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이 났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원동마을에서 최고의 매화 명소로 꼽히는 곳은 순매원이다. 홍수진 시인의 시비가 있는 언덕 아래 위치한 순매원은 12년 전 김용구(64) 씨 부부가 철길 옆 언덕에 조성한 매화농장으로 수령 100여 년 된 고매화를 비롯해 음력 설날을 전후해 꽃이 피는 설중매, 홍매화 등 8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철길 따라 심겨 있다. 기찻길 따라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3월이면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올 순매원 매화는 이달 말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가 찾은 15일에는 이제 막 매화가 꽃망울을 떠뜨리기 시작했다. 예년 같으면 개화가 40~50% 정도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이달 들어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개화가 1주일 정도 늦춰졌다고 한다. 대신 철로변에 서 있는 설중매 한 그루가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곧 만개할 매화 소식을 미리 전해주고 있었다.
순매원의 가장 큰 매력은 한 뼘 간격으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낙동강과 철길, 매화의 조화다. 봄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는 낙동강의 푸른 물빛과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매화,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열차의 모습은 살아 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순매원 앞을 지나는 열차는 하루 140여 편에 이른다. 화물을 가득 싣고 느릿느릿 길을 재촉하는 화물열차를 비롯해 무궁화'새마을'KTX 열차가 수시로 지나간다. 마침 KTX 열차가 지축을 울리며 쏜살같이 스쳐갔다. 이어 흐르는 강물처럼 S자로 긴 곡선을 그으며 무궁화 열차도 지나갔다. 매화가 만발한 시기, 꽃구름 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열차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이 때문에 순매원은 사진 명소로도 이름이 높다. 순매원 매화 소식이 들리면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작가들로 길이 비좁다. 특히 순매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순매원에서는 국수와 파전으로 요기를 할 수 있다. 매화가 피는 3월에는 평일에도 국수와 파전을 맛볼 수 있지만 3월이 지나면 주말에만 먹을 수 있다. 순매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 씨 부부는 "장사 목적이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국수와 파전을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가격표를 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국수는 1천원, 파전은 3천원이다. 싼 게 비지떡은 아닐까? 취재하느라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국수와 파전을 시켰다. 양은냄비에 담겨 나오는 국수에는 계란'부추'김 등의 고명이 빠지지 않고 올라와 있다. 1천원 받아서 남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게다가 양이 모자라면 국수는 더 준다. 파전도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나왔다. 반찬으로 나온 배추김치와 파김치는 적당히 맛이 들어 국수와 파전의 맛을 돋우었다. 순매원에서 먹는 국수와 파전 맛은 일품이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끝내준다. 매화 그늘 아래서 낙동강과 열차를 벗 삼아 국수와 파전을 먹으니 4천원에 이만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다.
◆홍매화 피는 통도사
양산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 통도사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 삼보는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인 불(佛)'법(法)'승(僧)을 의미하는 말이다.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로 승보사찰인 전남 송광사,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사찰을 이루고 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봉안돼 있는 까닭에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통도사는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특징뿐 아니라 한국의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전각들이 동서축과 남북축을 중심으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일주문~천왕문~불이문~대웅전에 이르는 동서축은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 천왕문에서 바라보면 대웅전이 보인다.
순매원에서 매화 향기에 반한 관광객들이라면 통도사에 들러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통도사에 그윽한 향기와 선홍빛 자태를 뽐내는 홍매화가 있기 때문이다. 꽃이 일찍 피기로 유명한 통도사 홍매화는 3월 통도사 방문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홍매화 피기를 기다렸다 먼 길을 찾아오는 사진작가뿐 아니라 화사하게 물오른 산사의 봄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앞다퉈 카메라 앵글에 홍매화를 담는 것은 천년 고찰의 봄을 깨우는 고고한 자태 때문이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Tip:순매원에는 주차공간이 없다=가끔 경사가 급한 좁은 언덕길을 따라 순매원으로 차를 몰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는데 금물이다. 주차는 홍수진 시인의 시비 주변에 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도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는 주차난을 각오해야 한다.
대구에서 순매원 가는 길=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IC~58번 국도 김해'삼랑진 방면~양산'삼랑진 방면~1022번 지방도 양산'원동 방면~원동역을 지나 고갯길을 조금 올라가면 홍수진 시인 시비와 순매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순매원에서 통도사로 가려면 1022번 지방도 양산 방면~청하지기 공장 방면 우회전~화제찜마을에서 우회전한 뒤 통도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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