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는 산에 풀어놓아도 도망가지 않는다. 원래 겁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좁은 토끼장에서만 살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살라고 놓아준 집토끼는 먹이를 찾지 못하고 자기 몸에 남아 있는 지방을 태우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선거 때마다 대구경북은 집토끼가 된다. 도망갈 리가 없다고 여긴다. 다소 못마땅해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심정으로 순치된 집토끼가 주인 섬기듯 대구경북은 특정 정당만을 지지해 왔다. 박근혜당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치르는 이번 선거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새누리당은 생각하고 있다. 공천을 빨리 하라고 지역 여론이 아우성을 쳐도 새누리당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깃발만 꽂으면' 원하는 대로 표를 줄 것이니 다른 지역 공천을 끝내고 마지막 땜질을 해도 괜찮다는 식이었다. 대구경북은 공천이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졌으며, 지역 사정에 어두운 후보를 낙하산식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집토끼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구경북이 이유 없이 보수 정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 이후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대구경북을 발전시킬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호남에 비해 영남 지방은 소득 수준이 매우 낮았다. 그 후 서울'경인과 영남 지방을 두 축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개발의 혜택과 정치적 엘리트 충원에서 영남 지방은 집중적인 혜택을 받았다. 대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에 대한 보은으로 대구는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구의원부터 시장, 국회의원까지 예외 없이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다. 묻지마식 싹쓸이 투표다. 외부인과 눈 맞추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지내는 자폐증적 현상이다. '수구꼴통'이라 한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민주당 등 다른 정당은 이곳에 발 들여 놓을 엄두조차 못 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은 그 어느 정치 세력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치적으로 고립된 섬이 되고 말았다. 광주도 대구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5'18이라는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말할 수는 없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 서울 중심의 발전론으로 대구에 대한 혜택도 사그라졌다. 대구는 18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로 추락한 상태다. 새로운 발전의 동력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생력 없는 집토끼 꼴이다. 선거 때가 되면 으레 이런 대화가 오간다. "한쪽만 몰아준께 신경 안 쓴다 아이가. 글마들이 해준 게 뭐꼬. 이제 골고루 시켜야 된데이." "그래도 우짜노, 이번에는 달라지겠지." 이런 공방도 허무하게 결과는 보수 정당에 대한 몰표 행진이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이런 말도 오간다. "인자 진짜 마지막이데이. 뭐라 캐도 박근혜 대통령 시킬라 카믄 이번에는 몰아줘야 한데이. 그래야 대구가 발전할 거 아이가." "뭐라카노 이명박이 대통령 돼가 대구가 잘된 게 뭐 있노." 이번 선거 결과는 어떨까.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 비율도 높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성론도 있다. 대구가 보수의 울타리를 벗고 스스로 먹이를 찾는 산토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자폐증 걸린 집토끼처럼 또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이 지역 출신 정치인이 뜻을 펴는 데 초를 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정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하려면, 대구경북이 이번 선거에서 수구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박근혜는 정치적으로 고립된 대구경북이 아니라 전국적 보편성을 가진 대구경북이 선택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더 이상 박근혜를 대구경북에 묶어 놓고 이 지역 발전의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를 전국을 활보하는 산토끼가 되도록 놓아주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번 선거를 다양한 정책과 색깔을 가진 정당이 경쟁하면서 이 지역을 발전시키도록 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저고리는 색동저고리가 예쁘고, 무지개는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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