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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스탈린의 심복 라브렌티 베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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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렌티 베리야는 그루지야 출신으로 1899년 오늘 태어나 21살 때 비밀경찰 체카 요원이 됐다. 3년 뒤 분리 독립을 외치는 그루지야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1만여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산됐다. 그의 무자비한 공적은 같은 그루지야 출신인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의 눈에 들어 출세 가도를 달리는 계기가 된다.

193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된 그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시작되자 그를 도와 체포와 처형을 일삼았으며 내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 스탈린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 되었다. 그는 보안 분야를 책임지면서 2차대전 당시 폴란드군 포로들을 학살한 '키틴 숲의 학살'을 주모했고, 서방의 핵 기밀을 빼내 소련의 핵개발에 이바지했다. 강제수용소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수용자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다.

말년에 접어든 스탈린으로부터 점차 신임을 잃게 된 그는 1953년 사망한 스탈린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스탈린 사후 권력 투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니키타 후르시초프와 게오르기 말렌코프에 의해 체포돼 6개월 뒤인 그해 12월 처형됐다. 스탈린 못지않은 냉혈한이자 피를 부르는 압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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