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대외 문물 개방 자세에서 시작됐다. 조선은 주류 세력이 대외 개방에 대해 국가의 몰락을 자초할 것으로 판단, 쇄국을 강조한 반면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국력 신장에 도움이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이전에도 바깥 사정에 어두운 쇄국 국가는 아니었다. 조선과는 임진왜란 이후 국교가 트여 정기적으로 매번 400~500명 규모의 통신사절단이 왕래했으며 중국과도 명말청초(明末淸初)의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교역을 이어갔다. 유럽 등과도 무역이 활발했다.
이런 연유로 미 해군 제독 매슈 C. 페리가 문호 개방을 요구하며 함대를 몰고 왔을 때 일본은 개방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고, 불만은 있었지만 개방 조약을 맺었다. 페리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과의 수교가 맺어지자 러시아,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이 일본 열도에 본격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일본의 문을 연 페리는 증기선을 주력으로 하는 해군의 강화책을 진행함과 동시에 사관 교육의 임무를 맡아 '증기선 해군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1854년 오늘은 페리 제독이 일본과 '미일 친선 조약'을 맺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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