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텃밭상자' 덕에 도시농부 됐네!

도시생태농지지원센터 폐목재 재활용 '텃밭' 제작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도시생태농지원센터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도시생태농지원센터 '에코팜잉'(Ecofarming)에서 제작한 텃밭 상자에 오이와 상추 등 각종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성일권기자

2일 오후 대구 중구 북성로2가 공구 골목. 공구 가게들 사이에 빨간색 셔터가 내려진 낯선 가게가 눈에 띄었다. 이곳을 지나던 이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이곳은 도시생태농지원센터인 '에코팜잉'(Ecofarming)으로, 도시 농사에 필요한 농업 용구를 제작하는 곳이다. 이들이 만드는 농업 용구는 소박하다. 꽃과 식물, 과일이 그려진 합판으로 된 텃밭 상자가 전부다.

북성로 공구 골목에 쓰레기를 재활용한 텃밭 상자 제작소가 문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에코팜잉은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시작한 사업으로 시민들이 도시에서 생태적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돕는 '마을 기업'이다. 대구 중구청으로부터 보조금 5천만원을 지원받아 최근 문을 열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텃밭 상자에 담긴 철학은 '순환'이다. 에코팜잉은 쓰레기를 재활용해 텃밭 상자를 만들고 여기에 농작물을 심어 도심에서 생태적 순환을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사업이 시작됐다.

공구 골목에 문을 연 것도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목재 팔레트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지역 예술가들을 모아 상자에 환경적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상자 디자인과 기획을 맡고 있는 오은정(29'여) 디자이너는 "원래 폐가구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자재를 구하기도 힘들고 상자를 만들기에 규격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면서 "공구 골목에는 버려지는 목재 팔레트가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

인근 공구 회사들도 '새 이웃'을 환영하며 무료로 폐자재를 공급하고 있다. 크레텍책임 송병철(62) 물류센터장은 "목재 팔레트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나무가 으스러져 재활용하기 힘들다"면서 "보통 톱밥 공장으로 보내 처분하거나 겨울철에 장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넘겼는데 못 쓰는 자재를 가져가서 젊은 사람들이 좋은 일에 사용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시민들의 단체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대구 어린이집과 아파트, 주민센터 등 여러 단체에서 200여 개의 텃밭 상자를 주문해 도시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4월 텃밭 상자를 주문한 비둘기 어린이집 김정은(51'여) 원장은 "반별로 텃밭 상자를 하나씩 구입해 아이들이 직접 토마토와 고추를 기르고 있다. 멀리 농촌에 가지 않고 어린이집 바로 앞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농사체험과 교육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류경원 에코팜잉 기획팀장은 "올해 지역에 텃밭 상자 1천 개 보급 목표를 세우고 있다. 8월부터 텃밭 가꾸기 전문 강사를 양성해 각 단체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