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25참전 소년소녀병, 특별한 희생엔 특별한 예우 필요하다"

정부·국회 차원의 관심 절실…관련법은 국회서 '표류'
3만 명 참전해 생존자는 2천700여 명…헌재 "피해 배·보상 강구해야"
진실화해위도 특별법 제정 등 "실질적 명예 회복 조치 필요" 권고
관련 법안 16~21대 국회서 '임기만료 폐기'…22대 국회서 '6전7기'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소년·소녀병들의 특별한 희생에 대해 국가가 이제라도 정당한 감사와 추모, 보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영덕군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공원에서 열린 전몰 학도의용군 추념식에서 생존 학도병들이 떠나간 전우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6·25 전쟁 당시 참전한 소년·소녀병들의 특별한 희생에 대해 국가가 이제라도 정당한 감사와 추모, 보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영덕군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공원에서 열린 전몰 학도의용군 추념식에서 생존 학도병들이 떠나간 전우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6·25 전쟁 75주년을 사흘 앞둔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의 비석 위에 새 한마리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
6·25 전쟁 75주년을 사흘 앞둔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의 비석 위에 새 한마리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당시 참전했던 소년소녀병들의 '특별한 희생'에 대해 '특별한 예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도 소년소녀병과 그 유족들에 대한 특별한 보상과 추모비, 추모행사 등 명예선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서다.

국가보훈부, 국방부 등 정부 측 관심과 함께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한 국회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3만여 명 중 2천700여 명만 생존

6·25 전쟁 발발 초기 국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주역 중 하나는 만 17세 이하의 어린 소년·소녀들이었다. 당시 10만여 명이었던 국군 수를 고려할 때 3만여 명에 달했던 소년소녀병의 참전은 아군 전력에 큰 보탬이 됐다.

자원 입대하거나 징집된 이들은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를 포함해 여러 주요 전투에 참여해 활약했다. 학적 소유를 불문하고 군번을 부여받은 정규군이었던 이들 중 2천500여 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전후 생존자는 2천7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의 실체에 대해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하염없이 세월이 흘렀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에야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년소녀병의 정확한 실체를 조사·확인하라'는 의견 표명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들은 심신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참전, 정신적·육체적 피해, 교육기회 상실 등으로 제대 후에도 사회 적응과 자립 기반 마련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5년 소년소녀병 5명이 제기한 '강제징집 등 위헌확인' 심판청구에서 "재정 여건이 허락된다면 소년병들의 희생을 기리고 피해를 보상 내지 배상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현재 시행 중인 보상 관련 법률은 성인으로서 참전한 사람과 소년병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어 소년병들이 입은 피해의 특수성과 중대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매일신문 DB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매일신문 DB

◆진실화해위, "실질적 명예회복 조치 필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국가가 이들의 공헌과 헌신에 상응하는 별도의 지원 및 예우를 하지 않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명예 회복 조치가 필요하다고 국가 기관을 향해 권고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소년병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 ▷보훈 관련 법령에서 '소년지원병'이 아닌 '소년병'으로 올바르게 정의하고 실질적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할 것 ▷지속적인 위령 사업과 함께 현충 시설과 위령탑을 건립할 것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를 설치해 전수 조사 및 피해 사실을 규명할 것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첫 단추인 법안 제정부터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6·25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 등을 위한 법률안의 연혁은 제16대 국회(2000년~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제22대 국회인 지금까지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16~18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은 정무위원회에서 심사 받았으나 당시 보훈처의 반대 등에 부닥쳐 처리되지 못했다. 신체상 등 특별한 희생이 없어 보상을 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에서다.

제19대 국회부터는 국방위원회 소관 법안으로 바뀌었으나 본회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보상금을 위로금으로 수정하고, 유족 범위를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으로 한정하는 등 논의가 이어졌으나 형평성, 보훈 체계와 미부합 등 반대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 등 반대를 고려해 추모비 건립, 추모행사 등 명예 선양을 위한 내용을 중심으로 처리하기로 여야가 중지를 모았으나 잦은 국회 파행 속에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제22대 국회에서 법안은 '6전 7기'의 마음으로 본회의 처리를 위한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한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대구 동구군위군을)은 법안 처리를 위해 수 년간 애정을 쏟고 있다.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계엄·탄핵, 대선 국면도 정리가 됐고 새로운 장관도 내정이 된 만큼 다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여건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더 늦지 않게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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