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적 같은 일/송성영 지음/오마이북 펴냄
"나 농사짓고 살래."
머지않은 미래에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얘기를 하면 열에 여덟은 "풉!"하고 웃는다. "넌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느냐?" "농사지어서 밥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 "뭘 모르니까 하는 얘기지" 등등 가시 돋친 대답이 돌아온다.
그나마 "고향이 농촌이냐?"고 진지한 질문이 간간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만 살았다"는 대답에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참살이에 대한 관심이 높고,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기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열을 올린 뒤에야 "그건 그렇지…"라는 탐탁잖은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농촌에 '사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야 수긍하는 셈이다.
사실, 속은 그렇진 않다. 농사를 지어 돈을 벌 자신도, 재간도 없다. 수년째 주말마다 경북 성주에 마련한 한 마지기 밭을 일구고 있지만 농사는 어렵고 힘들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1주일만 지나도 밭은 잡초로 '정글'이 되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으니 노력에 비해 작황은 변변치 않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농산물처럼 씨알이 굵고 색깔이 선명한 작물도 잘 나지 않는다. 식구들이 나눠 먹고 지인들에게 나눠줄 정도다.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으며 먹고살 수 있을까.
답은 적게 벌고 적게 쓰면 된다. 하지만 풍요와 소비에 익숙해진 내게 '자유롭고 소박한 삶'은 30대 후반에 키가 더 크지 않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은 자유롭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다. 충남 공주 계룡산 자락에서 살던 가족이 호남고속철도 건설 공사로 밀려나 전남 고흥의 바닷가에 새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오염되지 않은 터를 잡고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목조주택을 짓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 도서관을 세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터를 잡고 집을 짓는 과정이다. 빈집을 수리해 살아가던 가족이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고 집 짓기에 나선다. 소작농에서 1천500평 땅을 가진 대지주로 엄청난 신분 격상이다. 여유가 생기니 욕심이 생기기 마련. 남편과 아내는 끊임없이 티격태격이다. 남편은 흙집 한 채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아내는 민박을 할 수 있을 만큼은 돼야 한다고 맞선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은 목조주택에 가구도 새로 들이고, 각종 전자제품에 싱크대, 화장실 변기도 모두 새것으로 마련한다. 남편은 호화판 집이 영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양새를 갖춰가는 집. 집 옆에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도 짓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책도 채워넣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귀농한 지 10년이 넘은 저자마저도 애먹는 게 새 터 잡기다. 부부의 말싸움 구경에 실실 웃으며 읽다 보니 한숨이 난다. 저자가 돈벌이가 늘고 씀씀이가 커져 마음이 불편하다는 벌이가 한 달에 150만원이다. 그가 사는 터는 전화선도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안학교에 다니거나 꿈을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한다. 도저히 그처럼 살 자신이 없다. 내게 '귀농'은 정말 '기적 같을 일'일까?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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