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동차를 몰아본 사람이라면 STOP 사인 때문에 가슴 철렁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STOP 사인은 미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단속하는 교통신호이다. 신호등 없는 네거리에서 소위 선입선출(先入先出)원칙에 의해 늦은 밤에도 STOP 사인을 자율적으로 지키는 것을 보노라면, 미국사람들의 질서의식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짧은 기간 미국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또 하나 감탄한 일이 있었다. 대로로 진입하기 위한 우회전 코너의 황색선이 그어진 곳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곳 인근 고등학교에 차를 타고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내 주차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차도를 따라 주차를 하게 되는데, 아무리 학교에서 멀어도 황색선 코너부분에는 절대 주차하지 않았다. 이것이 교육효과일까? 아니면 벌금딱지효과일까?
골목길을 끼고 사는 우리들로서는 사거리에서 먼저 갈려고 차 머리 들이미는 것을 매일 겪고 있다. 출근이나 퇴근 시 대로변 진입 코너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안타깝게 나 자신도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동참하지만, 골목길 주행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STOP 교통사인이 있고, 대로로 진입하기 전 코너에 주차금지 황색선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지키지 않는 걸까? 바빠서? 몰라서? 단속을 안 해서?
어느 신문에서든 도덕성을 고발하는 기사를 거의 매일 볼 수 있다. 예컨대, 최근의 매일신문'악취 나는 시민의식, 팔공산은 울고 싶다'(2012년 7월 9일자) 기사를 보자. 팔공산의 취사금지구역에서 취사를 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함부로 주차하고, 수영금지 팻말 무시하고 등등. 팔공산을 더럽히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통해 우리의 시민의식을 책망하고 있다. 건전한 시민의식 함양 차원에서 이러한 팩트(사실) 지적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얼마 전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시민들을 경찰이 단속하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경찰이 그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까'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우리는 꼭 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야 했다.
시민들이 상호 불편해 하는 다소 사회규범적인 것들은 사회운동 차원에서 전개하면 어떨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유치원에 다시 가지 않더라도, 국가가 우리 호주머니를 기웃거리기 전에 누군가가 깃발을 들고 시작하면 안 될까? 왜 우리는 신문의 팩트 보도, 경찰 단속, 다음은 흐지부지로 가는 일들을 계속 반복해야 되는 것일까?
최근 모 라디오 방송의 '책 읽어주는 라디오' 캐치프레이즈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문구가 신선하다 못해 우리가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가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고 있다. 모 일간지가 We start 운동, 학교 업그레이드 운동을 하고 있다. We start 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그 언론사가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지역신문은 지역민들이 불편해 하고 다들 이렇게 했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선진국 수준에 맞는 품격, 국격(國格)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근차근 한걸음 한걸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떨이를 제공하는 사후적 노력보다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교통질서 지키기,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기, 반갑게 인사하기, 양보하기, 새치기 않기 등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것들이 많다. 방법에는 캠페인'교육사업'동참활동(사진전, 기업 소개 등)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매일신문이 도시 공동화(空洞化) 문제를 제기하고 골목투어로 연결시켜 간 것은 자랑할 만한 대표적인 동참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보다 큰 어젠다를 제시하고 나를 따르라는 언론 고유의 역할이 있지만, 선진국 수준에 걸 맞는 윤리, 지키면 다 같이 편한 세상이 되는 질서 운동도 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보다 나은 지역 만들기를 위해 누군가가 나서서 하면, 우리가 다 같이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질서 운동을 매일신문이 앞장서길 기대해 본다.
유병규/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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