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호황인가 불황인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심리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개인의 심리가 모여서 대중의 집단심리가 되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서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를 만드는 것들이 있다.
먼저 그 유명한 '치마길이 지수'가 있다.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라고도 하는데 바닥에서 허리까지의 길이 중 바닥에서 치마밑단(헴라인)까지의 길이가 차지하는 비율을 수치화한 것으로, 헴라인 지수가 높아지면 여성의 치마길이는 짧아진다.
이것은 1926년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가 주장한 이론으로 경기가 좋을 때는 여성들이 비싼 실크 스타킹을 보여주기 위해 치마를 짧게 입고, 경기가 나쁠 때엔 스타킹을 살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마를 길게 입는다는 것이 이론의 배경이다.
당시만 해도 실크 스타킹의 가격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후에 나일론 스타킹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불황엔 옷감 값이 덜 드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불황=미니스커트' 이론이 대두됐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불황=긴 스커트' 이론이 더 잘 맞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영국에선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긴 치마가 유행했다. 최근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2012년 패션쇼에서 이전보다 더욱 짧아진 치마가 등장한 것이 경기 회복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치마길이는 경기의 지표로 상반된 해석이 있지만 불황을 시사하는 다른 지표로 '립스틱 효과'가 있다. 경기가 나쁠수록 비교적 적은 돈으로 자신을 뽐낼 수 있는 립스틱이나 매니큐어 같은 화장품의 인기가 좋아진다는 것.
하지만 경기가 안 좋으면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자신을 꾸미기에 열심인 여성들로 인해 값 비싼 화장품 판매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떻든 불황일수록 여성들이 더욱 돋보이려고 한다는 것이 '립스틱 효과' 이론의 요지라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미니스커트는 오히려 불황에 등장한다는 말이 더 맞을 듯도 같으니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립스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의학에도 '립스틱 사인'(lipstick sign)이라는 용어가 있다. 의학용어사전에도 나오고 외과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말은 경기지표에서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던 여성 환자가 립스틱을 바르면 퇴원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학에서 '립스틱 사인'은 회복의 지표로 쓰이는 용어다.
질병과 수술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고 기력도 회복돼야 비로소 몸단장 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엔 '립스틱 효과'보다 차라리 '립스틱 사인'이 더 기다려진다. 이제 불황에서 '퇴원'할 때도 됐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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