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오늘 오전 9시 30분 역사적인 평양 방문에서 시민들에게 외쳤다. 대통령은 정일권 국군 총사령관 등 환영 인파 속에 평양 능라도 비행장에 내려 평양시청으로 이동, 환영식장에 모인 5만여 명의 군중에게 호소했다. 39년 만에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고 소개한 대통령의 호소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25전쟁으로 밀리던 국군과 UN군은 이 작전 이후 북진의 기회를 잡았고, 국군 1군단은 10월 1일 동해안 쪽에서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했고 UN군은 서부지역에서 북으로 북으로 진격했다. 평양 점령을 위해 국군 부대와 미군은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선점 경쟁을 벌였다. 결국 국군 1사단 산하 연대가 10월 19일 밤 미군을 제치고 평양을 맨 먼저 점령한 부대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이뤄졌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부터 북진통일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통령의 염원과는 달리 38선으로 남북은 영원히 갈렸고 통일은 요원했다. 통일에 집착했던 대통령의 끝은 비참했다. 오랜 독재와 부패 등으로 민심이 돌아서면서 한때 존경받던 독립운동가는 1960년 4'19혁명에 따른 하야와 하와이 망명, 1965년 망명지에서의 쓸쓸한 죽음으로 영욕의 세월을 마감했다.
정인열(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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