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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눈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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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사람 -김기택

똑똑 눈이 땅바닥을 두드린다

팔에서 길게 뻗어 나온 눈이 땅을 두드린다

땅속에 누가 있느냐고 묻는 듯이

곧 문을 활짝 열고 누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는 듯이

눈은 공손하게 기다린다

땅이 열어준 길에서 한 걸음이 생겨날 때까지

팔과 손가락과 지팡이에서 돋아난 눈이 걷는다

한 걸음 나아가기 전까지는

거대한 어둠덩어리이고 높은 벽이고 아득한 낭떠러지다가

눈이 닿는 순간

단 한 발자국만 열리는 길을 걷는다

더듬이처럼 돋아난 눈은 멀리 바라보지 않는다

하늘을 허공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나아갈 방향 말고는 어느 곳도 곁눈질하지 않는다

눈에 닿은 자리, 오직 눈이 만진 자리만을 본다

어쩌다 지나가는 다리를 건드리거나

벽이나 전봇대와 닿으면

가늘고 말랑말랑한 더듬이 눈은 급히 움츠려든다

눈이 두드린 길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온몸이 눈이 되고 길이 된다

허리가 잔뜩 줄어들었다가 쭉 펴지며 늘어난다

몸 안으로 들어온 길만큼

한 평생의 체중이 실린 또 한 걸음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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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다 더 세밀한 그림도 있지만, 시는 그런 그림보다 몇 배나 더 세밀할 수 있습니다. 언어로 치밀하게 묘사한 것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이 화질을 몇 단계나 더 업그레이드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눈먼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 이 언어적 그림은 그 치밀함이 놀랍습니다. 지팡이로 땅을 가볍게 두드리며 한 발씩 나아가는 장면을 이렇게 느리게, 그리고 그만큼 더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 세상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박현수<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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