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정치 쇄신의 주체를 자처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 진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야권 전체로부터 '진영 논리에 갇혀 웬만해선 질 수 없는 선거(대선)를 내 준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친노 진영이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행세하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안팎에서도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심지어 차기 당권 경쟁에 후보를 내지 않는 용단이 필요하다는 주문까지 나오고 있다.
비주류 측 김영환 의원은 대선 직후 친노 진영을 향해 "그분들은 이번에 대선 평가를 위해 일단 뒤로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며 "무리하게 그분들이 다시 지도부를 지명한다든지 하면 민주당의 쇄신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친노 2선 후퇴론'이다.
이에 친노 측은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 일선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선출 과정이 어떠했든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고 책임은 민주당 전체가 함께 져야 한다는 논리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대선 패배 이유를 일부에 한정해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모두가 반성하고 필요한 조치와 노력을 해야지, 일부 책임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친노 진영은 지난해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하며 제1야당 대선 후보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완전참여형 국민경선제도 도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모바일투표가 시행된 1월과 6월 전당대회에서 한명숙'이해찬 대표를 만들어냈다. '당심'에선 밀렸지만, 노사모를 필두로 한 '친위부대'가 결정적 힘을 발휘했다. 이들은 9월 문재인 후보가 당 대표로 대선에 출전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 시민사회 일각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중 공과를 두고 국민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친노 출신의 대선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다소 위험이 따른다는 전망을 내놨다. 아울러 친노 진영의 독단과 도덕적 자기 우월 의식이 대선 정국에서 야권 전체의 힘을 하나로 합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친노 진영은 현실적인 득표력을 앞세워 '문 후보 불가피론'을 밀어붙였고 결국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진검승부를 벌였다. 친노 진영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승리를 자신했지만 결국은 보수 대결집의 산을 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문 전 후보가 정치적 활동을 재개하면서 친노의 향후 행보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문 전 후보는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정비되면 힘을 보태겠다'는 의중을 표시하고 10여 일간 경남 양산 자택에서 칩거했다. 대선 복기(復棋)와 향후 정국 구상에 전념했다.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던 문 전 후보는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재개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며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권에선 문 전 후보가 친노 진영의 얼굴 역할을 맡으며 향후 야권의 권력구조 재편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친노 진영 핵심 관계자는 "1천400만 명이 넘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후보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두고 문 전 후보가 심사숙고를 한 것으로 안다"며 "'친노'가 아닌 '민주당' 나아가 개혁'진보 진영 모두가 사는 방안을 실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선 친노 진영이 2선으로 물러나는 결단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선 후퇴 의사가 있었다면 대선 이후 지금까지 시간을 끌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선 당내 최대 계파라는 점을 활용, '당헌'당규'를 앞세워 당 정비작업에 전념하는 한편 차기 지도부 경선에 계파색이 엷은 '대리인'을 출전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에서 실패한 친노 진영이 기댈 데라고는 당권밖에 없을 것"이라며 "일단 계파 중립적 인사를 당 대표로 추대한 후 살길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친노 진영의 행태를 두고 당 내외의 비판이 거세다. 사실상 야권과 개혁'진보세력이 총동원된 선거에서 패배하고서도 전혀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시민사회의 한 원로는 "문 전 후보가 대선 정국에서 수도 없이 얘기했던 정권 책임론과 대선 패배 책임론은 궁극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라며 "친노 진영이 여전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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