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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데드 슬로우-김해자(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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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가 항구에 접안하듯

큰 사랑은 죽을 만큼 느리게 온다

나를 이끌어다오 작은 몸이여,

온몸의 힘 다 내려놓고

예인선 따라가는 거대한 배처럼

큰 사랑은 그리 순하고 조심스럽게 온다

죽음에 가까운 속도로 온다

가도 가도 망망한 바다

풀 어헤드로 달려왔으나

그대에게 닿기는 이리 힘들구나

서두르지 마라

나도 죽을 만치 숨죽이고 그대에게 가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이번 생에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시집 『축제』(애지, 2007)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전염성이 약한 바이러스가 큰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감염되기도 힘들고 퍼뜨리기도 힘들다. 유사 이래로 큰 가르침을 내세웠던 성인들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했던 큰 사랑. 피로, 고행으로, 실천궁행으로 전염시켜 보려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건실한 항체들의 대행진이다. 갈라섬과 반목과 질시, 약탈과 억압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큰 사랑 면역결핍 바이러스가 여태껏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항체의 굳히기 자세가 공고하다.

큰 사랑은 나보다는 남, 기쁨보다는 슬픔을 끌어안는, 행복보다는 불행을 다독이는, 넘침을 덜어 모자람을 채우는, 밝음을 내어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을 '이번 생에' 보기란 시인의 말처럼 어려울 것 같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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