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박근혜는 여류 韓非子(한비자) 일까

요즘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시빗거리가 있다.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왜 정부 부처별 업무 보고 내용을 브리핑해 주지 않느냐는 시비다. 인수위가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수위가 업무 보고 받는 목적은 각 부처 업무 현황과 계획을 내실 있게 인수받아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 이행 방향과 로드맵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인수위 입장으로 보면 일리가 있다. 반대로 '인수위 부서별로도 칸막이를 쳐놓고 자기 맡은 일 외에는 서로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통이 되느냐'는 언론 쪽의 불평도 나름 이유가 된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가 인수위 단계부터 '불통'이니 '밀봉'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을 좀 더 깊이 헤아려 보려면 박근혜라는 지도자의 '캐릭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인자를 두지 않고 업무의 보안을 강조하며 통치 기밀이 누설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그리고 보안 유출을 두고 '촉새처럼 나불거려서…'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불편한 심기(心氣)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강성 이미지에서 그녀의 통치 철학이 어쩌면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사상을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추측일 뿐이지만 만약 박근혜 차기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어떤 정치적 성장 배경과 상황 속에서 싹트고 배어들었든 간에 한비자의 법가 사상으로 무장돼 있다면 앞으로 5년간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은 중앙집권적, 최고 권력 중심 체제로 흐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냉혹한 이성적 통치 속에서도 각각의 것이 각자 제자리에서 약속과 규범 아래 상호 변칙 없이 융화돼 굴러가는 법가적 장점이 더 커진다면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제2의 여류 한비자가 돼서 나쁠 건 없다.

'인수위가 칸막이 쳐두고 부서 간에 서로 하는 일을 모를 정도다'는 불평도 한비자의 '일인일직(一人一職)주의'의 예화(例話)를 이해하면 불필요한 불평이 된다. 어느 대신(大臣)이 술에 만취해 정신을 잃었을 때 그의 모자를 간수하는 시종이 옷을 맡아 있는 시종에게 옷을 받아 대신의 몸을 덮어주었다. 술에 깬 대신이 처음에는 충성심에 기뻐했다가 나중에 시종 두 명을 다 처벌한다. 모자 시종은 옷 담당이 아닌데도 옷을 덮어줬으니 월권행위를 했고 옷 담당 시종은 옷을 다른 시종에게 내줬으니 자기 직무에 태만했다는 이유였다. 한 신하가 다른 신하의 책임 범위를 제멋대로 벗어나 범하는 것이 지휘자로서는 추위에 누워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인수위 단계에서 벌써 일인일직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녀의 법가 스타일의 통치 기술이 벌써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랄까.

'군주는 결코 그의 생각을 신하에게 드러내지 않고 신하들로 하여금 그의 뜻을 헤아리도록 해야 하며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 아무도 믿지 않고 냉정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지적들은 향후 박근혜 정권을 이해하는 데 작은 지침이 될지 모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버지의 옛 신하가 그녀를 모른 체 외면하더라는 배신감을 겪으면서 더더욱 한비자의 냉혹한 치세 철학 쪽으로 기울었을 수 있다. 또한 아버지 시대의 통치 철학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제2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거치며 군주와 신하의 충성과 배신을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법치와 원칙 중심, 약속과 규범 중시의 법가적 통치 철학이 몸과 정신 속에 배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녀의 통치 철학과 사상이 법가 쪽이라면 앞으로 꾸려질 내각의 장관들은 첫째 명예와 돈을 경멸하는 자는 제외될 것이다.(그런 자들은 군주에게 충성하기보다 자기만의 또 다른 가치나 이익만을 좇게 된다.) 선행(善行)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람도 뽑히지 않는다.(그런 자들은 대중들의 환심만 사려 들고 군주에게 모든 걸 바치지 않는다) 또한 너무 강해지면 중간에 잘릴 것이다.(군주가 가는 길이 막히지 않게 하려면 길 쪽으로 뻗어져 나오는 나뭇가지를 잘라야 하는 것과 같다)

첫 여성 대통령이 동양의 마키아벨리처럼, 냉혹한 이성적 한비자가 될지 안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어떤 사상을 가지든 이 나라를 아버지 시대보다 더 굳건하고 풍요한 민주국가로 되세우기만 한다면 인수위 브리핑이 있고 없고 시비쯤이야 무슨 대수이겠는가.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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