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다재다능 명물 의사 두(頭)신경과 한병인 원장

바이올린·초상화·합기도…진료실 안팎 '끼' 발산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메디컬드라마에서 본 모습이 떠오른다. 지독한 공부벌레. 환자를 진료하는 근엄한 모습,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장면들이 연상된다. 하지만, 의사 중 다양한 끼를 발휘하는 '명물(?) 의사'도 있다.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 두(頭)신경과의원 한병인(48) 원장. 그는 세상살이에 관심이 많고 쿨하다. 의사 가운을 벗으면 '팔색조'로 변신한다.

◆청소년기

두신경과란 이름이 특이하다. '머리와 신경질환을 연구한다'는 뜻이지만 사연이 있다. 한 원장은 "개업하기 전부터 이름은 단 한자로만 짓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밝힌다. 이유는 단지 '글자 수가 많으면 간판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란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평범한 의사와는 무언가 생각부터 다르다. 한 원장의 얘기를 들으면 한 편의 영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원장은 경산 출신이다. 부모가 모두 교사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업가로 변신한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 슈퍼마켓, 꽃집, 양어장, 아이스크림가게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덕분에 청소년기는 거의 집안일 도우미였다. 부산역 근처에 자리를 잡으면서 부산사람의 거센 텃세에 시달렸다. 중학교 시절은 거의 '왕따'였다. 체격이 왜소한데다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심한 구박을 당했다. 그때 '역시 남자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태권도 도장을 다녔다.

◆신경과 전문의 되기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면서 합기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종종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힘으로 그들을 제압할 필요성을 느꼈다. 합기도 도장에서 8년 동안 열심히 단련했다. 합기도 3단이 되면서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힘으로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국민생활체육 대구시합기도연합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부산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대구로 왔다.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경북대 의대에 진학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전공의)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동안 방황을 했다. "응급의학은 꼭 필요한 분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응급의학 체계의 환경이 너무 열악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결국, 미국행을 선택했다. 뉴욕 알바니 의대 면역학교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2년 만에 미국 의사 자격증을 따서 귀국했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남들보다 전공의 공부를 한 번 더 한 셈이다.

◆출퇴근 대중교통'11층까지 걸어서

2008년 두신경과를 개업했다. 출근은 늘 도시철도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진료실까지 11층을 걸어서 오르내린다. 집과 의원에서 일회용품 사용도 자제한다.

개업 초기 땐 환자가 많지 않았다. 고교 때 학원에서 배웠던 미술 실력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얼굴 모습을 그려 선물했다. "진짜 똑 닮았다는 사람도 있고, 전혀 안 닮았다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대학 시절엔 축제 때마다 목탄으로 '1인 5분 초상화'를 그려주고 2천원씩 받았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요즘도 한 장에 공식 가격은 2만원이지만, 1만원으로 할인해 줍니다"며 허허 웃는다.

진료실 밖을 나오면 변신을 한다. 틈틈이 합기도 도장에 가서 체력단련을 한다. 대구시의사협회 학술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에 가면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분위기를 북돋운다. 즐겨 연주하는 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트로트 가요다. "공중보건의 시절 전북 무주군 회의 때 자청해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더니 군수님이 정말 좋아하더라"고 한다. 요즘도 늘 바이올린과 초상화 그림도구를 지참, 즉석에서 실력발휘를 한다.

◆알고 보면 공부하는 의사

취미나 특기가 많아 자신의 '끼'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결코 본업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뇌졸중, 어지럼증, 이명 등에 관심이 많아 끓임 없이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고 책도 발간하고 있다. 초음파 뇌 혈류 검사, 어지럼증의 진단과 치료 등 전문서적을 펴냈으며 수십 편(SCI급 5편 이상)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2010년에는 두신경과의 '뇌 혈류 초음파 검사'가 국가대표 우수의료기술 65건에 포함되기도 했다. 요즘은 치매와 파킨슨병, 어지럼증, 신경마비, 통증 분야의 치료를 쉽게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특히 어지럼증 치료를 위한 '특수기구'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그에게 목표가 있다. 50대에는 서울에도 진출하고 60대가 되면 의학공상 분야 소설 한 편쯤 쓰고 싶다. "70대가 되면 합기도를 계속하며 '장수운동모임'을 결성, 힘과 체력을 비축하고, 80대는 음~ 잘 죽을 준비해야지요. 허 허 허!"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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