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성이 좀 까다로운 편이다. 남들이 먹기를 꺼리는 음식도 잘 먹는 편이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입맛에 맞는 국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 뚝딱하지만 맛없는 것은 반 그릇 비우기도 어렵다. 잘 차려놓은 한정식집보다는 이름조차 없는 허름한 식당의 따스운 밥과 반찬이 훨씬 맛있을 때가 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집의 특징은 첫째 장맛이 나쁘거나, 둘째 화학조미료를 많이 쓰거나, 셋째 설탕과 물엿을 남발하여 음식에 단맛이 나는 곳이다. 입맛을 당기게 하는 집은 칼국수 집일 경우 간장 양념 속의 파, 마늘, 풋고추 등을 듬뿍 썰어 넣어 항상 신선하고, 파전과 부추전을 구워 낼 때도 간장 양념과 초고추장을 동시에 낼 줄 아는 집이다. 돼지수육을 내면서 맛있는 새우젓은 빠뜨리고 "김치에 싸서 된장에 찍어 잡숴요"를 고집하는 그런 집을 나는 혐오한다.
생선회도 까다롭게 굴어야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 있다. 요즘 이름난 어시장에 가도 80~90%가 양식 생선이거나 수입산이다. 자연산 생선은 눈 닦고 찾아도 없을 만큼 귀하고 귀하다. 물론 자연산이면 어종을 불문하고 비싸다. 헐값으로 자연산 생선을 먹겠다면 그건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생선회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참 재미있다. '횟집에는 비 오는 날 찾아가면 근사한 손님 대접을 받는다'' 생선회에 레몬 액을 첨가할 필요가 없다''양식이나 자연산이나 양분에는 큰 차이가 없다''생선회 전문가라도 눈 감고 먹을 경우 양식과 자연산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 등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생선회만을 몇십 년 동안 다뤄온 진짜 전문가들은 "양식과 자연산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한다. "자연산은 씹을 때 뒷맛에 단맛이 받치고 해초처럼 바닷내와 같은 향이 난다. 이걸 감칠맛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아주 담백한 맛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식은 약간 떫은맛이 나고 바다가 주는 묘한 향은 느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름난 어시장에 갈 경우 굳이 자연산만을 고집하지 말고 양식이라도 커다란 놈을 구입하면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물건을 모르면 돈을 많이 주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 말은 어시장에서 생선 횟감을 구입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사꾼들의 얼렁뚱땅 거짓말은 천당 가고 못 가는 요건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장사꾼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판판이 실수하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의 거짓말은 오래된 농담일 뿐 죄가 되지 않는다. 공부와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한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어시장마다 단골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단골이 나에게만은 바른말을 해 줄 수 있도록 도타운 정을 쌓아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와 함께 다니는 여행도반들은 그날의 어시장 정보를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한다. "뭐 좋은 것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아예 오지 마세요." 헛걸음하지 않는 것이 고수들의 처신 방법이다.
어시장에서 우리가 찾는 횟감이 없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그때는 몸을 낮추고 밑으로 기는 방법도 있다. 다행히 제주 같은 곳에서 하루 정도의 말미가 주어진다면 대낚시 하나를 빌려 방파제에서 용치놀래기, 황놀래기, 어랭놀래기 등 이른바 어랭이낚시를 하면 한두 시간 만에 서너 사람이 술안주를 할 충분한 양을 잡을 수 있다.
제주도 차귀도에서는 낚싯배 하나를 빌려 낚시를 하면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의 어랭이를 잡을 수 있다. 몇 년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차귀도에서 낚싯배로 낚시하여 어랭이와 독가시치, 그리고 말쥐치 새끼들을 한 냄비쯤 잡아 새꼬시회로 먹다가 그것도 물려 어랭이튀김을 해 포식한 적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고 아예 그럴 능력이 없다면 여행지로 떠나기 전에 맛집 정보를 미리 알고 가는 게 가장 유익하다. 어랭이 물회는 제주 시내 용두암을 지나 용담1동 용천탕 옆 영희식당(064-753-8317)이 가장 유명하다.
된장을 풀어 말아준 어랭이 물회 한 그릇 먹고 나면 배가 불뚝 일어난다. 먹고 나서는 시간대별로 남녀가 함께 이용하는 용천탕에 풍덩! 하고 들어가면 제주가 온통 내 것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