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실은 하나, 인식은 둘

한자(漢字)는 우주나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동식물, 신체, 가구 등 사물의 모양에서 출발한 그림문자다. 그래서 한문에는 우주와 자연, 사람살이의 이치가 숨어 있다.

당나라 때 시를 영어로 옮길 경우 그 시가 가벼워 보이는 것은 한문과 영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그 안에 많은 이치를 품고 있기 때문에 간결하게 쓰더라도 깊은 의미를 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영어로 옮길 경우 글자 그 자체의 의미만 옮길 가능성이 크고, 당연한 결과로 한시는 가벼워진다.

당나라 시인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려고 했고,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드러내려고 했다. 그들은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암시나 여백에 집중하려고 했고, 암시나 여백이 깊을수록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보았다. 이런 특성까지 고려하면 한시를 영문으로 제대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에서 '친일파'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를 일본 사람들은 '일본과 친한 한국인' 정도로 인식한다. 태평양 전쟁(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당시 일본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을 '귀축미영'(鬼畜美英), 즉 귀신이나 짐승 같은 미국과 영국이라고 불렀다. 당시 '친미파'는 매국노였다.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친미파'는 부정적인 의미를 거의 띠지 않는다. '친일파' '친미파'라는 간단한 용어조차 사람마다, 나라마다, 세대마다 이처럼 인식 차이가 크다.

악수와 포옹이 누군가에는 '작별의 인사'가 되고, 누군가에는 '돌아오마' 약속이 되기도 한다. 떠났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고 믿는 사람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돌아오마 약속을 나누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버선발로 달려나간다. 똑같은 악수를 나누고도 이렇게 다르다.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에 대해 독자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나아가 문학작품은 독자의 손에서 제각각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덕분에 한 사람이 쓴 소설 작품이 만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애매한 해석은 오히려 우리를 괴롭힌다. 팩트가 분명한 근현대 역사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리고 선거 때마다 원수처럼 싸우는 게 그런 경우다. 이런 싸움은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리가 미흡한 데서 기인한다. 논란 많은 근현대사를 이제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