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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수소폭탄과 비키니 데이, 구보야마 아이키치

1954년 오늘, 남태평양 마셜군도의 비키니 섬 일대에 섬광이 번쩍였다. 뇌성에 이어 하늘이 어두워졌고 하늘에서는 재가 쏟아졌다. 당시 바다에는 일본의 참치잡이 배 '제5 후쿠류마루' 호가 조업을 하고 있었다. 잿가루가 갑판에 쌓이자 놀란 선원들은 위험을 느끼고 해역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물을 걷느라고 이미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배는 귀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3명의 선원들에게는 구토와 두통 등 여러 질병이 찾아왔다.

이들을 덮친 것은 '죽음의 재' 즉 방사성 물질이었다. 소련과 핵무기 개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2차대전 때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1천 배 위력인 수소폭탄 '브라보'를 미국은 비키니 섬에 투하했다. 결국, 반년 후 선원 구보야마 아이키치(당시 39세)는 "피폭 희생자는 나를 마지막으로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사건은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반핵단체들은 매년 3월 1일을 '비키니 데이'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다. 제5 후쿠류마루 호의 비극은 방사능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물이 문명에 복수한다는 내용의 영화 '고질라'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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