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막말 공화국' 지도층·일반인도 사용, 국가 품격도 떨어 뜨려

"늙으면 죽어야 해.", "대졸 부인,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부장판사), "너 아빠랑 사귄 거 맞지? 카톡 내용 보니까 아빠랑 사랑한 거네."(검사), "술집에 나가는 X! 수업은 왜 들어와서 XX이야."(대학교수),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레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국회의원)

대한민국에 '막말'이 판을 치고 있다. 국회의원, 판사, 검사, 교수 등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일반인들까지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막말 공화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사적인 공간이 아닌 국회 본회의장, 법정, 강의실과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도 막말이 난무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다시 입에 담기조차 싫은 막말이 도배되고 있다.

◆막말에 오염된 대한민국

대법원은 부장판사가 재판 도중 피고인에게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과 관련 7일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근무했던 A(47) 부장판사는 마약관리법 위반 전과가 있는 B(44) 씨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재판 도중 B씨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동부지법 한 부장판사(46)가 60대 사기 사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심문하던 중 진술이 불명확하게 들리자 "늙으면 죽어야 해"라는 말을 해 물의를 빚어 징계를 받았다. 이 일로 대법원장이 사과까지 하고 법원이 그동안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는데도 법관의 막말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검사도 '막말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검찰은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여고생 피해자에게 2차 가해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서울남부지검 C검사에 대해 최근 감찰에 착수했다. 이 검사는 지난해 8월 의붓아버지에 의한 성폭행 사건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인 여고생에게 "솔직히 말해야 해. 너 아빠랑 사귄 거 맞지? 카톡(카카오톡) 내용 보니까 아빠랑 사랑한 거네"라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막말 원조', 정치판

정치인들의 막말은 이미 도(度)를 넘은 상태다.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의 '공천 헌금' 사건이 터지자 자신의 트위터에 "'공천 헌금'이 아니라 '공천 장사'입니다.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레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의원은 "'그년'은 '그녀는'의 오타"라고 해명했지만,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품위 없는 막말로 국민들의 주목을 끌어보려 정치인들은 앞다퉈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 집구석이 하는 짓거리가 전부 돈 훔쳐먹고 마누라도 훔쳐 먹을라고 별 짓 다 하고 있다." "서민 다 죽이는 이명박 정권은…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등의 막말로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

◆막말 없애기, 선진국 가는 첫걸음

대한민국이 '막말 공화국'으로 전락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영남대 법대 배병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고 깎아내리는 모습이 남에게 막말하는 세태로 번져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학교에선 점수 경쟁이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내고, 직장 등 사회에서도 품격있는 대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는 "우리가 모두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보다 부족해 보여도 결국 사람이다. 함부로 말을 했을 때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말고, 잘못을 지적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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