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1부> 새로운 출발 ①자격증의 힘

나를 지켜주는 부적, 자격증…창업·재취업 자신감 '업'

그림: 화가 이도현
그림: 화가 이도현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창업이나 재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표한 2012년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50대 자격증 취득자는 2만6천310명으로 5년 전인 2007년보다 73% 늘었다. 60세 이상도 지난 5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50대가 가장 많이 딴 자격증은 한식 조리기능사, 지게차 운전기능사, 굴삭기 운전기능사였다. 60대는 조경기능사, 한식 조리기능사, 지게차 운전기능사 순이었다.

◆자격증은 나를 지켜주는 부적

자격증은 발바닥에 붙은 밥풀과 같다. 안 떼어 내면 불편하고 떼어낸다 해도 그것으로 먹고살 수는 없다.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장롱면허가 되더라도 자격증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어교사 자격증과 한식 조리사자격증을 딴 은퇴자 이명은(53) 씨는 "자격증은 은퇴자들에게 '명함'과 같은 존재다. 자신감을 주는 것은 물론 주눅 들지 않게 하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은퇴 후 중심을 잡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은퇴자들이 평생 직업을 갖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격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창업이나 취업을 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와 주택관리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는 수강생들이 20% 이상 증가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지수호(54)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격증과 마주하게 됐다. 지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채 일찌감치 취업을 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그는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동안 앞만 보고 일했으나 정작 자신의 노후는 준비된 게 없다는 것을.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폴리텍대 영주캠퍼스에 붙어 있던 '산업설비과가 평생직업을 보장합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지 씨는 학교에 입학했고 특수용접기능사 등 5개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뒤 창업했다. 지금은 어엿한 건설업체 사장님이다.

김순녀(53) 씨. 그는 간호조무사 공부를 뒤늦게 시작해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 간호사가 꿈이었던 그녀는 50이 넘어 1년 넘게 학원에서 공부를 해 자격증을 땄다. 자신의 나이와 경력을 활용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키워놓고 50이 되어서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딸 같은 젊은이들과 공부할 수 있어 즐거웠고 또 이 나이에 취직이 가능해서 행복하다"며 시작이 반이라고 강조한다.

◆1년만 미친 듯이 매달려라

'은퇴쇼크'의 저자 전도근은 말한다.

"대개의 구직자들은 원하는 직업이 있어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나 관련 기관을 찾아가 방법을 확인하고,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을 찾는 지름길입니다."

전씨는 머뭇거리지 말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으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1년만 열심히 하면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모(51) 씨. 그는 중소기업에서 일했으나 꿈은 레스토랑 조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은퇴 후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조리사 선배를 직접 만나 길을 물었다. 선배는 자격증과 실무 경험이 있고 추천을 받으면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그는 요리학원에 등록했고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뒤 식당에 취업해 잡일부터 시작해 현장경험을 쌓은 후 이력서를 제출했다. 조리사로 먼저 취업한 선배의 추천을 받아 지금은 꿈에 그리던 레스토랑 조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투자한 시간을 보면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3개월, 10개월 동안 현장에서 경력 쌓기를 했다. 그가 조리사가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13개월이었다. 1년만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미리 준비해도 좋다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문모(59)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따 놓았던 공인중개사와 금융 관련 자격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명퇴를 하고 나온 후 창업과 재취업 모두를 알아봤지만 이것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찾아간 상담사에게서 들은 답은 자격증을 이용해 창업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창업을 권한 상담사는 '성공하려면 옛날은 모두 잊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씨는 '내가 그렇게 어설프게 보이는가' 하는 생각에 내심 불쾌했다. 그러다 우연히 은행에 다니는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퇴직한 직장 선배들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딱하다. 아직도 자신이 옛날의 아무개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패를 하고도 큰소리를 치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시작하니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을 아랫사람 다루듯 한다'며 불쾌해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문 씨는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창업 이전에 실무를 배워 제대로 해야겠다고 결심, 1년간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했다.

창업을 한 문 씨는 현재 보험회사 경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집을 사러 오는 이들에게 대출 상품을 소개하고 좋은 금융 상품을 추천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공인중개사가 된 것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일에 성공의 의지를 불어넣고 있다.

자격증은 나를 지켜주는 우산이다. 당장 사용되지 않더라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인생의 우요일(雨曜日)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든든한 보험 역할을 한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 화가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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