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로운 문화인류의 기본 한반도서 시작하자

한반도 발(發) 네오르네상스/이도수 지음/한국 문화사 펴냄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한 고등학교에서 두 한인 학생이 결투를 벌여 한 사람이 죽었다. 학년은 같으나 나이가 다른 두 사람은 '선배 대접'을 놓고 다툼을 벌였고, 결투로 승부를 내기로 했던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에 싸웠음에도 주변의 학생들은 이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결투원칙'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어느 한쪽이 항복하기 전에 제3자가 끼어드는 것이 룰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여론은 '교내 살인 방치'라며 격앙했지만, 미국 사회는 그다지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다.

우스개처럼 들리지만 한국 사람들은 싸우다가도 한쪽이 코피를 흘리면 싸움을 끝냈다. 코피를 낸 쪽이 이긴 쪽이고, 코피가 터진 쪽이 지는 쪽이었다. 어쩔 수없이 주먹싸움을 하더라도 죽음에 이를 만큼 치열하게 싸우지 않는다는 인식, 즉 안전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수렵문화, 유목문화를 거쳐 온 서양인들은 힘겨루기가 일상이었고, 일단 싸웠다 하면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흔히 '기사들의 싸움'으로 알려진 서양인들의 결투는 죽음이 승부를 내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지은이 이도수 교수는 '미국사회에서 종종 발생하는 총기사건 역시 그 밑바닥에 목숨을 건 싸움에 익숙한 서양문화의 포악성이 숨어 있다'고 본다. 그는 사람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먹 싸움은 코피가 날 때까지만 허용한다'는 한국문화 코드를 세계로 파급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싸움뿐만 아니라 춤 역시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한국의 춤이 세계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한반도 발 네오르네상스'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합하여 인간적인 사회, 지성이 넘치는 사회, 만인이 평화롭게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예술이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여러 방면에서 '한반도 발 네오 르네상스'를 실천하는 사람들과 사례들을 묶은 것이다.

'네오 르네상스 '(Neo-Renaissance)는 '새로운 부활'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르네상스 운동은 14세기 말∼16세기 초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기치 아래,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 과학기술정보혁명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물질문명이 인간소외, 인간부재를 야기했다는 반성이 일어나면서 다시 한 번 인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는 것이 '네오 르네상스'이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 마음가짐 등 한류로 정리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국경과 세대를 넘어 전 인류를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발 네오 르네상스' 현상으로 인구의 94%가 백인인 미국 워싱턴 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승승장구하여 워싱턴 주 5선 상원의원을 거쳐 상원 부의장까지 오른 신호범 박사, 미국연방 하원의원에 오른 김창준 의원 등 '백인사회의 장벽을 뚫은 한인 영웅들'을 꼽는다. 그들은 소수 민족으로 백인사회의 문화코드를 잘 읽었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장점까지 잘 활용한 경우였다.

K-pop과 싸이의 말춤 역시 한반도 발 네오 르네상스에 해당한다. 한국의 스포츠와 문화예술에 반한 외국인들은 '역겨워서 냄새도 맡기 싫다'던 김치를 잘도 먹는다. 한국 가수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학생은 학교에서 '인기짱'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컵라면을 맛본 학생들은 점심 도시락으로 컵라면을 사달라고 저희 부모들을 조르게 되었다.

근래 한류는 정부주도라기보다는 민간인 주도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인다. 지은이는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민 주도로 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가 성숙했다는 것이다. 또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우리가 쌓은 기술과 지식, 문화와 예술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한류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인이 세계에서 대접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은이는 그러나 그보다 한국의 참 맛, 참 멋이 전 인류의 삶에 건강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219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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