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출·비행 청소년에 나침반 역할…중부경찰서 박승현 경사

소녀가장 안타까운 사연에 일자리·보금자리 주선…"주경야독 동생들 돌볼

비행을 저질렀던 가출 청소년에게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경찰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대구 중부경찰서 수사과 박승현(44) 경사. 박 경사는 지난달 24일 대구시내 백화점과 마트를 돌아다니며 700만원 상당의 식료품과 의류, 휴대전화 등을 훔친 혐의로 A(16) 군과 B(17) 양을 붙잡았다.

B양은 소녀가장.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가 집을 떠났고 아버지마저 B양과 두 명의 동생만 남겨둔 채 가출했다. 텅 빈 집안에 남겨진 B양과 동생들을 보살펴준 이가 할머니였다.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B양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묵묵히 동생들을 돌봤고 공부도 곧 잘해왔다. 그러다 2년 전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B양은 두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하는 소녀가장이라는 짐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결국 지난해 8월 가출을 결심했다. B양은 집을 나와 A군을 만났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A군도 B양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A군 역시 부모님의 가출로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와 누나와 함께 살았다. A군과 B양은 서로 상처를 보듬으며 허전한 마음을 채워갔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모아둔 돈을 다 써버린 이들은 배가 고플 때면 마트에서 김밥, 샌드위치, 빵, 음료수 등 먹거리를 훔쳤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훔친 휴대전화를 팔아 찜질방 비용을 마련했다. 급기야 갈아입을 옷을 구하기 위해 폐점한 백화점에 몰래 들어가 옷, 가방, 신발 등을 훔쳐 달아났다.

10대 가출 청소년의 범죄 행각은 지난달 24일 경찰에 붙잡히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B양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됐다.

박 경사의 도움으로 가출과 함께 놓았던 펜과 책을 다시 잡게 된 것. B양은 경찰에게 "검정고시에 합격해 못다 한 공부를 마치고 야간 대학을 다니며 동생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B양의 딱한 사정을 들은 박 경사는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 경사는 지인을 통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해줬다. 낮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안전하고 저렴하게 머무를 수 있는 보금자리도 구해줬다.

박 경사는 "한참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밖에서 가족의 정을 찾으려다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었다"며 "가끔 일하는 곳에 들려 열심히 살아가는 B양을 볼 때면 마음 한켠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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