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의 흥행 추이가 만만치 않다.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개봉 18일 만에 330만 명을 돌파했다. 갱스터 영화 가운데 이렇게 빠른 걸음을 낸 영화는 드물었다. 이 장르 최고의 흥행작인 '아저씨'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비슷한 속도이다. 사실 갱스터 장르는 그 속성상 18금(禁)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을 모으는 데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잔혹한 폭력이 스크린에 전시되기 때문에 여성이나 연인이 보기에도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있는 '신세계'는 어떤 영화인가? 더 나아가, 왜 이렇게 열광적 반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갱스터 영화란 어떤 영화인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폭 영화이다. 관객들은 왜 굳이 돈을 지불하고 불법적인 욕망과 노골적인 폭력의 전시, 그리고 차가운 응징이 자리 잡은 이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갱스터 필름은 단지 깡패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욕망을 은유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조직의 1인자와 2인자의 복종과 배신이라는 미묘한 관계, 갑이라는 조직과 을이라는 조직의 목숨 건 대결은 곧 정치에 비유된다. 정치에 비유되는 것은 세상살이에 비유되는 것을 의미한다. 갱스터 영화야말로 우리 세상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박훈정이 특이한 것은 불법 세계와 합법 세계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마 같은 야수를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엘리트를 그린 '악마를 보았다', 주류 사회의 검은 커넥션을 현미경으로 해부하며 세상은 온통 타락했다고 이야기하던 '부당거래'의 작가 박훈정은 '신세계'에서는 작가와 감독이 되어 다시 한 번 선과 악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을 고발한다.
막이 열리면 '신세계'는 노골적일 정도로, 이제는 전설이 된 홍콩영화 '무간도'를 차용한다. 국내 최대의 기업형 범죄 조직인 '골드문'의 회장이 의문의 사고로 죽는다. 박훈정은 회장이 죽은 원인이 아니라 회장이 죽은 이후에 방점을 찍는다. 회장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다르게 말하면 누가 회장이 될 것인가? 죽은 자는 사라지고 잊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죽은 회장의 직계인 이중구(박성웅)는 수적 우위를 내세워 세력을 넓히고, 2인자인 정청(황정민)은 자기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때 경찰청의 강 과장(최민식)이 골드문에 심어둔 경찰 자성(이정재)을 통해 조직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 작업한다. 정청의 오른팔이 된 자성은 이제 그만 경찰로 돌아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지만, 강 과장의 통제가 질겨 고민에 사로잡힌다.
이 관계의 그물망이 영화의 핵심인데, 조폭에 들어간 경찰이라는 설정만 보면, '무간도'를 차용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신세계'는 '무간도'와 다른 영화이다. '무간도'는 경찰에 들어간 조폭, 조폭에 들어간 경찰의 상호 정체성의 혼란이 핵심이었지만, '신세계'는 조폭에 개입된 경찰의 이야기만 존재한다. 즉, 경찰의 일방향에서 조폭을 조절하고 조정하는 시선만 존재할 따름이다. 해서 영화는 곧 '무간도'를 차용한 후 넘어서며 다른 이야기로 나아간다.
네 명의 인물 가운데 박훈정이 방점을 찍은 인물은 자성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 과장의 말을 어길 수도 없고, 정체를 알면서도 감싸주는 형 정청을 배신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결국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를 끝까지 감싸주었던 정청이 죽기 전 하는 말, "독하게 굴어~ 그래야 니가 살어"라고 할 때 드디어 그는 결심한다. 이때 카메라는 뒤로 빠져 정면을 보고 있는 자성을 길게 보여주면서 그가 변할 것이라는 점을 예시한다. 이제 자성의 드라마가 시작되고 곧 완성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평범한 경찰로 일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자성이 조직의 보스로 '떠밀려' 나온다는 것이다. 떠밀려 나와도 나오는 순간, 당연히 손에 숱한 피를 묻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갱스터 필름의 전설이 된 '대부'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피아 조직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대부'의 마이클과 겹치게 된다. 이후 그가 행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차갑고 냉혈한 대부의 탄생! 조직은 그래야만 굴러간다.
'신세계'에서도 박훈정은 경찰이라는 합법과, 조폭이라는 불법이 선과 악의 구조로 양분되지 않는다고 아예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여기에는 선인과 악인이 없다. 불법을 저지르는 경찰, 의리를 중시하는 조폭 가운데 누가 나쁜 놈인가? 동생을 챙기려는 정청이 자성을 이용만 하는 강 과장보다 더 악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복잡한 인물의 관계망을 박훈정은 마치 다큐멘터리로 보도하듯이 한발 물러서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담아낸다. 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스스로 스크린 속에 재현된 삶을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만든다. 적어도 자성이 판단하기 전까지는.
'신세계'는 코리안 갱스터 필름의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욕망을 위해 조폭이 되었다가 결국 응징 당하는 이 장르의 규칙을 넘어서고, 경찰의 통제권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대부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전의 한국 갱스터 필름과 확연히 갈라선다. 흥미로운 것은 박훈정이 우리 사회를 분석해 이런 갱스터 필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기존 장르를 연마하면서 이 감각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의 장르적 성찰과 자의식을 나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차기작이라는 '신세계' 프리퀄이 몹시 기다려진다. 정말 그는 한국형 '대부' 시리즈를 만들 것인가!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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