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용법 몰라요"…환자 생명 구하는 자동 '심장충격기'

심정지 환자수 매년 1천여명…대구 100대 미만 설치 부족

대구 시내 곳곳에 응급 심장마비 환자를 위한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돼 있지만 사용법 등 홍보가 미흡한 실정이다. 15일 대구 중구청 민원실 직원이 깨알 같은 설명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시내 곳곳에 응급 심장마비 환자를 위한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돼 있지만 사용법 등 홍보가 미흡한 실정이다. 15일 대구 중구청 민원실 직원이 깨알 같은 설명서를 살펴보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달 13일 오후 대구 중구청 민원실 한쪽 귀퉁이에 '자동제세동기'라고 적힌 1m 높이의 흰색 철제 상자가 세워져 있었다. 기자가 민원실 직원에게 "뭐 하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냐"고 묻자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내 상자를 살펴보더니 "심장마비 환자에게 사용하는 충격기 같다"고 답했다. 상자 외부에는 '심장마비 환자에게만 사용',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기재'라는 주의사항만 적혀 있을 뿐 사용방법에 대한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가 이용방법에 대해 물어보자 "글쎄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턱없이 부족한 심장제세동기

수백만원을 들여 설치한 심장 자동제세동기(AED)가 지자체의 홍보 부족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대구 중부소방서에 따르면 갑자기 심장이 멈출 경우 4분 후부터 뇌손상이 오기 시작해 1분마다 7~10%씩 생존율이 떨어지며 10분이 지나면 사망한다. 119 구급대원의 평균 도착시간이 6~8분임을 감안하면 최초 목격자의 응급처치가 환자 생존을 좌우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도 2009년부터 도시철도,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AED를 비치하도록 했다.

대구시의 심정지 환자 수는 매년 1천 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공공장소에 비치된 AED는 100대도 되지 않는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신고된 AED는 전국 7천441대. 이 중 서울이 3천126대로 가장 많으며 대구는 38대로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신고되지 않은 기기를 더한다 해도 구급차에 설치된 것을 제외하면 고작 59대에 불과하다. 이는 2011년 대구지역 심정지 환자가 1천316명으로 서울(3천540명), 경기(2천830명) 다음으로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런 것은 공공장소 AED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어 AED 설치가 사실상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법에 따라 AED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공공장소는 5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 일정규모 이상의 철도역사,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5천 석 이상의 체육시설 등이다. 하지만,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만 하더라도 대구지역 전체 317곳 중 AED가 설치된 공동주택은 3곳이 전부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AED 사용에 대한 국민공감대가 이뤄져 있지 않아 AED 설치를 처벌 조항을 두면서까지 강제화하기는 아직 어렵다"며 "현재는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AED 설치를 확대하고 있으며 조금씩 설치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고 말했다.

◆단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아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나마 설치된 AED도 전혀 활용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지역에 심장이 멈춰 구급대로 이송된 환자는 1천181명이지만 이중 구급차를 제외하고 AED가 사용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AED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AED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AED가 설치된 곳의 직원도 AED의 용도와 사용 방법, 위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용도와 위치를 알아도 사용 방법에 대해 묻자 "써본 적이 없다"며 "설명서를 참고하라"고 했다. AED 관리와 이용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AED가 설치돼 있어 AED를 스스로 찾는 것도 어려웠다. 기자가 13일 오후 도시철도 반월당역에 마련된 AED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AED의 위치에 대해 수차례 물었지만 위치나 용도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AED를 바로 곁에 두고도 응급상황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업계에 따르면 AED 한 대 가격은 250만~300만원. 응급상황에서 꼭 필요한 고가의 의료기기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모품처럼 세워져 있는 셈이다.

대구 중부소방서 대응구조과 안현우 구급대원은 "미국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AED 사용방법을 가르쳐 심정지 환자 생존율이 한국의 2, 3배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학교나 기관이 응급처치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데 반해 교육 신청률이 낮은 편이다"며 "AED 기기를 늘리는 것보다 기기의 사용 방법에 대해 많은 시민이 숙지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대구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심정지는 일반 가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AED가 필요한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기기 설치 신청을 받고 있다"며 "앞으로 차츰 이용 범위와 교육 대상을 확대해 AED 사용을 보편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키워드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갑자기 심장이 멈춘 환자들에게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전류를 심장에 통과시켜 심장이 다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자동 심장충격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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