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여자와 꽃

"늙은 년은 꽃도 싫어하는 줄 아는 강? 그걸 다 갖고 갔단 말이지…."

같은 병실 옆자리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용심이 많아 보이는 팔순의 할머니가 편치 않은 몸을 끌고 가쁜 숨까지 몰아쉬며 기어코 육두문자까지 내뱉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실 창가 쪽에는 화초들로 그득했다. 이른 시일 안에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한두 사람이 가져다 놓은 것이 우중충하던 병실 안이 환할 정도로 보기 좋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 돌보듯 보고 매만지며 꽃을 좋아하던 분이셨다. 더불어 다른 환자들까지 기분전환이 되곤 했었는데 병수발 하랴, 화초에까지 신경 쓰는 것이 귀찮았던지 시어머니가 검사실에 잠시 내려간 사이 며느리가 모조리 가져가 버린 것이다. 아마도 고부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별나게 화초를 많이 좋아했던 나는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화단에 정성을 쏟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친척분이 보시고는 젊은 새댁이 화초를 너무 정성들여 키우면 애가 안 생긴다며 지나치게 정을 쏟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런데 화초에 정을 쏟는 나와는 달리 내 어머니는 무척이나 꽃을 싫어하시는 듯했다.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때는 그저 워낙 알뜰한 분이시라 그런 것은 사치라 여기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만 하고 여태껏 병실에 드나들면서 한 번도 꽃을 사드리지 못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사시사철 탐스런 꽃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세상이다. 화훼단지나 꽃시장에 가면 종류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꽃들이 나의 마음을 붙잡아 놓는다. 생각해 보면, 갑갑한 병실에서 하루가 다르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꽃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즐거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러던 것이 일순간 사라졌으니 노발대발할 만도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슬며시 '난 꽃을 안 가지고 오니 가져갈 일도 욕할 일도 없겠네요?' 그러면서 덧붙여 옆자리의 환자처럼 그렇게 다투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어머니의 대답이 너무나 의외였다.

"늙어도 여잔데 꽃을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노…."

순간, 묘한 여운이 남겨지는 듯한 그 한마디에 나는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무조건 싫어하실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꽃 한 송이 들고 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엄마이기 전에 여자라는 것을 왜 여태껏 잊고 살았을까.

그렇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꽃을 받고 싶다는 것은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 것을.

윤경희<시조시인 ykh6463@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