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처럼 청순한 여자후배'나 '다정다감한 송중기 같은 남자선배'가 있을 줄 알았단다.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가장 기대했던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질문에는 소개팅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으며, 친구'선배와 함께 떠나는 첫 MT와 먹고 즐기는 대학축제가 그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캠퍼스의 낭만을 경험했을까? 막상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수지 같은 후배나 송중기 같은 선배는 환상이었고, MT나 축제는 시간도 여유도 없더란다. 캠퍼스의 낭만은 3040세대들이 기억하는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문구로 관객몰이를 했던 영화가 있었다. 캠퍼스의 낭만과 첫사랑을 다루었던 그 영화는 유독 3040세대의 남자들에게 지난 대학시절을 그리워하게 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음대 여학생(만인의 연인이었던 수지가 연기했으니 몰입도가 최고였으리라), 우연히 함께 하게 된 수업과제,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던 첫사랑의 기억, 사소한 오해로 이루어지지 못한 인연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3040세대의 대학시절을 배경으로 캠퍼스의 낭만을 그리워하게 하는 데 충분했던 것 같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캠퍼스 낭만의 첫 번째가 아닐까.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쿨한 연애'가 대세이다.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얼마 동안 사귀었나보다 몇 명을 사귀어 봤나가 연애 관록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같은 학과에서 동기끼리 사귀다 헤어진 뒤 쿨하게 친구로 지내며, 각각 다른 동기나 선후배와 또 커플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어느 취업사이트의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평균 연애기간은 100일이 가장 많았고, 첫 키스 시점은 사귄 지 일주일 이내와 한 달 이내가 반 이상이었으며, 헤어진 후 실연 극복 평균기간도 한 달이 가장 많고 일주일도 적지 않았다. 이래서야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기억할 만한 사랑이 있을까?
최근 신입생이 들어온 캠퍼스에는 회원을 모집하려는 동아리들의 유치 전쟁이 한창이다. 대학생이 되어 가입한 통기타 동아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우수에 젖은 선배의 모습은 아직도 막연한 동경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아르바이트에 취업 준비에 동아리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단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을 다니느라 취미나 봉사를 위한 동아리 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단다. 그나마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영어나 공모전 준비를 위한 동아리나 창업동아리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캠퍼스의 잔디밭에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철학을, 마르크스와 레닌을 논하던 대학생들의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하면서 기초 학문 교양과목들은 잇달아 폐강되는 데 반해 취업 관련 강의는 수강 신청 개시와 동시에 마감되고 있다. 요즘 대학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취업난 돌파'다. 이들에게는 캠퍼스의 낭만을 대표하던 대동제(대학축제)도 그 의미가 바랜 듯하다. '크게 하나 되어'를 의미하는 대동제라는 단어가 오히려 어색하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대학본부에서도 학교 평가 등을 이유로 축제기간에 정상수업을 요구하고 있으며, 성적에 민감한 학생들은 축제보다 수업을 선택하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축제장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또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학교를 벗어나고 있다.
캠퍼스에는 낭만이 설 자리가 없다. 첫사랑, 막걸리를 먹고 자란다던 캠퍼스 잔디밭에서의 술자리, 농활과 동아리, 치열한 이념논쟁, 그리고 대책 없는 낭만이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과거와 같은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는 감성적 분위기에 빠질 여유가 없는 것은 사회적 현실의 탓도 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학문을 하는 즐거움이 아닌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캠퍼스의 낭만은 사라지고 있다.
김미경/대구가톨릭대 교수·호텔경영학과 mkagnes@cu.ac.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