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닥공 정치, 침대 정치

정치와 축구는 같다? 성격이 전혀 다르고 비교 선상에 올리기도 힘든 분야지만 의외로 닮은 점도 많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늘 시간에 쫓기며 승패가 갈린다. 무엇보다 지켜보는 이가 많다는 점에서 정치와 축구는 생판 별개의 것은 아니다. 축구가 발로 하는 게임이라면 정치는 입으로 하는 축구다. 박근혜 정부 원년, 지금 우리 정치는 한국 축구와 빼닮았다. 어저께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한국 대 카타르전은 판박이 같은 우리 축구와 정치의 현실을 확인시켰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잇따른 인사 실패 등으로 그야말로 한국 정치는 아시아 A조 순위표처럼 혼전이다. 누가 브라질행 티켓을 따낼지 점치기 어렵듯 정국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못해 오리무중이다. '닥공 축구'로 속을 태우는 최강희호나 '닥공 정치'를 구사하는 박근혜호 때문에 국민은 슬슬 불안하다. 야당은 중동 축구를 베낀 '침대 정치'로 짜증을 부르고 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할리우드 액션에다 툭 하면 드러눕는 바람에 50여 일 만에 정부조직법 하나 겨우 도장 찍었다.

축구의 꽃이 골이듯 정치의 백미는 민생이다. 전술 전략과 조직력,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이뤄낼 수 있는 목표다. 발이 조화되지 않은, 머리 축구가 한계를 보이듯 가슴이 아닌 입과 고집으로 하는 정치는 늘 조마조마하다. 잘된 정치는 누가 봐도 명료한 국정 철학과 실현 가능성 높은 정책, 입 댈 데 없는 인사, 가치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좌우한다. 입이나 몸으로 하는 정치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축구는 그냥 여흥으로 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다르다.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 여야의 조화와 정치력에 따라 국가 운명이 갈리고 민생이 요동친다. 무엇보다 감독의 전술이 승부의 큰 그림이라면 선수는 경기력의 원천이다. 전술 이해도가 낮고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한둘만 있어도 그 게임은 지배할 수 없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능력 있고 흠 없는 공직자는 국정 철학을 구현하고 견인하는 밑거름이다.

그런데 새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인선은 게임을 망치는 화근이다. 벌써 장'차관 후보 6명이 낙마했다. 경기 개시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레드카드 받고 퇴장당한 꼴이다. 이 황당한 장면에서 국민은 국정 철학 구현이나 민생 안정은 고사하고 90분 종료 휘슬만 울리기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파행의 원인은 대체 뭘까. 야당은 대통령의 불통 수첩 인사를 빗대 '데스노트'라고 비아냥대며 부실한 검증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낙마한 공직자 후보들 면면은 우리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부패하고 부도덕한지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는 수확이다. 하지만 이리 흠결 많은 사람들을 굳이 쓰겠다는 이유가 뭔지 국민은 의아해한다. 박 대통령을 찍었던 유권자들 실망이 큰 것도 국정 철학 공유를 이유로 결격 선수들만 싸고 도는 감독의 '나 홀로 인사'에 대한 우려가 깊어서다.

아직 박근혜 정부 5년 임기의 첫해 출발점이다. 축구로 치면 전반전 초반이지만 축구에서 전반 5분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아무리 '국민 행복 시대'를 강조하고 정책 수행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공직자 인사에서 '국민 시름 시대'를 계속 부른다면 그 정치 게임은 끝이다. 답답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열받게 하는 축구는 기분의 문제이지만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치는 치명적이다.

중국 한나라 때 '경의결옥'(經義決獄)이 성행했다. '춘추'를 비롯한 여러 경전의 기록과 논설을 기초로 판결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법에 의거하지 않고 경전과 상부의 지시에 따라 판결한다면 어떤 폐단이 생길까. 입이 바로 법이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새 정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첫째는…' '둘째로…' 하며 번호 매겨가면서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고 수첩 인사로 일이 계속 꼬이면 국정 철학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지지도가 취임 한 달 만에 40%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 대통령이 대통합, 창조 경제, 국민 복지 등 첩첩이 쌓인 일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소통이다. 축구에서 조직력이 승패를 가르듯 소통은 정치의 큰 덕목이다. 6시 칼퇴근하는 박 대통령이 TV 중계로라도 축구를 봤으면 한다. 축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수확 아닌가. 축구와 정치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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