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엘리트 공무원의 대명사, '행정고시'의 역사는 꼭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1회 40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56회까지 매년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김연수(58) 대구시 행정부시장과 김동규 사무관(5급)은 대구시청 행정고시 역사를 대변한다. 23회 김연수 부시장은 지난 1981년 공직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직할시로 승격해 경상북도와 분리된 대구시청 1호 고시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반면 54회 김동규 사무관은 지난해 4월 대구시청에 처음 발령받아 이제 갓 1년을 보낸 막내 고시 공무원이다.
사실 공무원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김 부시장과 김사무관이 한자리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두 사람은 매일신문 세대공감을 통해 같은 길을 걷는 선후배지간으로, 30년 세월을 넘어 대구시청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왜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나?
▷김연수-1979년 행정고시 합격 당시 시대는 유신헌법 시절의 격동기였다. 대학 입학 후 내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꿈을 꾸었고, 결국 행정고시를 선택했다. 마침 대학에서 전공한 경영학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이 공무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떤 운명 같은 끌림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부터 노인복지,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김동규- 공직의 길을 걸으며 보람을 느끼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공직에 매력을 느끼고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공도 행정학을 선택했고, 군에 일찌감치 다녀온 후 고시공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연거푸 불합격의 쓴잔을 마셨다. 그러한 시련과 좌절들이 소명과도 같은 공직을 더욱 소중하게 해 준다.
◆공무원으로서의 보람과 애환은?
▷김연수-공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유혹이 많이 따르는 직업이다. 창창한 공무원 선후배들이나 동기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해 옷을 벗었다. 또 하나는 단조롭다는 것. 할 말 마음대로 못하고 샌님처럼 산다는 게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제안한 정책이 채택됐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을 때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
▷김동규-아직 발령받은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애환이라 할 만한 애환은 느껴보지 못했다. 보람 있었던 것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의 인수위원회 시기, 인수위원회 건의용 보고 자료를 만들어 본 경험이다. 며칠 밤을 새우며 열심히 일했지만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따끔한 질책을 듣기도 했다.
◆대구시청 공무원으로서의 역할과 한계는?
▷김연수-'나는 시청 공무원이다.' 서울로 출장 갈 때마다 대구시 대표선수라는 생각을 늘 하며 산다. 예산 규모나 정책으로 봤을 때 대구 지역사회에서의 시 공무원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중앙집권적 시스템하에서 지방분권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예산 배정이라든지 국책사업 투자를 유치할 때, 대구라는 한계를 느낀다. 인사적인 측면에서 수도권으로의 지방 인재 유출 또한 심각하다.
▷김동규-대구가 고향이다. 우리 대구는 인구 260만 명의 대한민국 3대 광역시로, 작은 동네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기반이 취약해 재정상태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각 부서에서 의욕적으로 대형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열정은 있으나, 예산 때문에 하고 싶은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무리한 대형 프로젝트를 강행하기보다는 알짜배기 사업들을 추진해 내실화를 꾀한다면 반드시 다시 도약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다.
◆중압집권국가 대한민국에서 중앙-지방정부가 공존하는 길은?
▷김연수-오랜 공직생활을 돌아봤을 때 결국 지역 발전은 사람에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브랜드 가치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방 인재 육성에 제일 중점을 둬야 한다. 좋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부터 대구는 인재의 도시로 불렸다.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해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김동규-중앙과 지방을 무 자르듯이 자르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랜 중앙집권 행정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으로 인해 아직도 중앙 중심의 사고가 팽배해 있다. 지방이 하는 사업은 무조건 지역이기주의에 기인한 것이고, 지방에 투자하는 것은 중앙의 사업에는 지장이 된다는 제로섬(zero-sum)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선배가 후배 공무원에게, 후배가 선배 공무원에게 바라는 점 또는 당부하고 싶은 점은?
▷김연수-공직 30년을 기준으로 처음 10년은 절대 청렴해야 한다. 청렴에서 존경이 나오고 정책의 힘이 나온다. 그래야 길게 간다. 그다음 10년은 자기계발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능력을 배가시키는 기간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못 했다. 나머지 10년은 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패배 의식을 떨치고 후배들의 귀감이 돼 줘야 한다.
▷김동규-선배가 후배 공무원들의 꿈과 열정의 원동력이 돼 달라. 예전에는 학력이 중요했다면 요즘 21세기는 학력보다는 자기 직업에서 쌓는 내공, 경력 전문성이 중요하고 대우받는 사회다. 선배들의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는?
▷김연수-이제 곧 퇴직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무욕(無欲)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다. 이제껏 공직사회에서 돌보지 못했던 수많은 가치들, 이를테면 가족, 자연, 종교적 목표를 실현하며 행복을 찾고 싶다.
▷김동규-공직에 있는 동안은 정말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현장에 나가 보겠다. 그러고 나서 '다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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