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버섯을 볼 수 있는 때는 가을 한 철뿐이다. 제철에 만나는 버섯은 그 향과 탁월한 식감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철을 지나면 자연산 버섯은 쉽게 만나볼 수 없다. 자연산 버섯은 비도 적당히 와야 하고 기온도 맞아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트에서 접하는 버섯들은 사시사철 최상의 상태로 소비자들을 맞는다. 어떻게 이런 풍성한 버섯이 식탁에 오를 수 있을까. 답은 농민들의 정성과 기술이다. 습도와 온도, 심지어 산소 농도까지 조정하는 까다로운 기술이 버섯에 담겨 있다. 더불어 버섯 생장에 맞는 환경조건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농민들의 정성도 듬뿍 담겨 있다.
1농장부터 6농장까지 매일 2천 박스, 연간 2천520t의 버섯을 생산하며 수십 년간 버섯 농사를 지어온 여상규(56) 백산농산 대표와 은행원 자리를 차버리고 귀농을 선택한 새내기 농부 이철민(29) 씨가 만났다.
◆버섯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상규=평생 농사를 지어 왔는데 처음에는 소를 키웠다. 매일 축사를 들여다봐도 소가 크지를 않는 것 같았다. 성질이 다소 급한 나로서는 소가 다 커서 출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웃음) 그래서 자본 회전이 빠른 농사를 찾아다녔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팽이버섯이었다. 16일에서 17일 정도면 다 자라서 출하가 가능했다. 버섯 농사는 환경이 쾌적하고 기업화할 수 있는 농업이었다.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철민=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의 한 은행 입사시험에 합격했다. 월급쟁이 생활을 하려던 중 농협에 근무하시는 아버지가 버섯 농사를 권했다. 처음에는 콧방귀도 안 뀌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백산농산을 방문했는데 그 규모에 놀랐다. 내가 생각하던 농업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이었다. 새로운 신천지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평범한 월급쟁이보다 생명산업에 도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버섯 농사 성공 방정식은
▷여상규=요즘 많은 사람이 "하다 안 되면 촌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농사를 쉽게 보고 하는 말이다. 이들의 생각과 실상은 많이 다르다. 주변에 이런 마음으로 귀농을 한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대부분 실패를 했다. 버섯 농사는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국내에서 제법 고소득을 올리는 작물로 알려지다 보니 퇴직을 하면서 자본만을 투자해 버섯 농사에 도전했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모든 작물이 기계보다 인력이 우선이다. 우수한 기술력과 성실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전의 길이 열려 있다. 청년실업 80만 시대라고 하는데 충분한 준비를 통해 버섯 농사에 도전한다면 농촌은 이들에게 새로운 블루 오션이 될 것이다.
▷이철민=버섯 농사 어렵다. 지금 15동의 버섯 재배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버섯 재배사를 마련하기 전까지 약 2년간 백산농산에서 재배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지난해 첫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버섯은 내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새로 지은 버섯 재배사는 종균의 특성에도 맞춰야 하고 주변 환경에 맞춰 온도와 습도, CO₂ 양을 조절해야 한다. 또 계절별로 각각 다른 환경을 맞춰줘야 한다. 본격적으로 내 농사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한 3년은 경험을 해야 나 자신의 버섯 재배사에 맞는 노하우를 가질 수 있다는데 아직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경험을 쌓고 이 경험이 내가 버섯 농사를 짓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
◆내 인생에서 버섯이란
▷여상규=버섯은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섯은 내 스승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동반자 이기도 하다. 버섯 농사를 짓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버섯에 올인한 덕에 버섯에 대해서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지식과 힘을 갖게 됐다.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버섯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이철민=한마디로 미래라고 말하고 싶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버리고 시작한 버섯 농사이니만큼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 그러나 버섯 농사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늘 배우는 자세로 노력하고 있다. 20년쯤 후에는 여 대표님처럼 버섯이 내 인생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여상규=IMF가 시작되던 1999년 팽이버섯을 재배하고 있었다. IMF 전 100g당 500원에서 800원 선에 거래되던 팽이버섯이 IMF 이후 90원에서 100원 선에 거래됐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한 달에 3천만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했다. 십여 년간 팽이버섯 농사를 하면서 벌었던 것을 불과 수년 만에 다 까먹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새로운 버섯을 키워보자고 생각했다. 이때 선택한 것이 새송이버섯이었다. 처음에는 재배 기술이 없어 한 달치 종균을 몽땅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을 하면서 기회가 왔다.
▷이철민=버섯 농사를 짓자고 결정할 때까지가 어려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버젓한 직장을 버리고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는 버섯 농사를 짓는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다. 오히려 버섯 농사를 시작한 후에는 아직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항상 백산농산 여 대표님께 묻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버섯 농사를 짓고 있다. 나에게는 백산농산 여 대표님이 든든한 언덕과 같다. 만약 여 대표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웃으며 버섯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상규=번듯한 직장을 내팽개치고 귀농해 버섯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어지간한 마음으로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버섯 농사에 도전한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귀농해 농사를 짓는 이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자기계발을 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단련해 나가야 성공이 가능할 것이다. 꿈을 크게 갖고 항상 노력하고 배우는 자세로 공부하다 보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남만큼 하면 남보다 앞서갈 수 없다. 더 열심히 노력해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란다.
▷이철민=내게 여 대표님은 아버지나 다름없다.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자주 만나고 속을 털어놓기도 한다. 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감사의 표현조차 제대로 못 해 본 것 같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는
▷여상규=김천 버섯 농가들의 힘을 모아 버섯 공동 선별, 포장, 출하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젊은 버섯 농민을 키워 우리나라 버섯산업의 대를 이을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 나 또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분발해 세계를 향한 글로벌 멀티 리더를 꿈꾸겠다. 버섯으로만 300만달러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뒀다. 앞으로 버섯 분야에 새로운 획을 그을 인재를 양성해 세계시장을 석권할 날을 기대해 본다.
▷이철민=당장은 한국 최고의 새송이버섯 농가가 되는 것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종류의 버섯 재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다.
◆여상규
1959년 경북 성주 출생
성의상업고등학교 졸업
상주대학교 축산과 졸업
경운대학교 농업MBA과정 수료
◆이철민
1984년 경북 김천 출생
성의고등학교 졸업
계명대학교 법학과 졸업
김천'신현일기자 hyun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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