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무엇이든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린 왕자는 잊지 않으려고 따라 말했다/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건/ 네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다/ 네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렇지만 넌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게 대해서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게 대해서 책임이 있어/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양희은 '잠들기 바로 전')
혼자였다. 끝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절벽 끝에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단 한걸음도 발을 뗄 수가 없다. 갑자기 서 있는 자리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애써보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결국 아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꿈이다.
어린 날, 어머니는 "키가 크려는가 보다"라며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깨어나 우는 아이의 등을 다독거렸다. 하지만 그 꿈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절벽 끝에서, 때로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또 때로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불안한 꿈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마흔을 훌쩍 넘기던 어느 날, 우리는 늘 'Who are you?'라고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의문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숨어 있던 두려움의 원인인지도 몰랐다. 그랬다. 'Who am I?'라고 묻는 것이 맞았다. 세상이 늘 네가 누구인지만을 묻는다면 그 답 또한 너는 누구냐로 되돌아올 것이 분명한 노릇이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믿음이 가득하던 시절을 단 한순간도 의심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의 가치가 단지 혼자만의 신념에 있다는 실패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운 것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어린 왕자의 고백은 쉰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 저린 것이다.
작년 6월 네팔 여행이 그랬다. 히말라야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생각이 부끄러운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후원이 끊어져 폐교가 되어버린 산간의 학교들을 보면서였다. 그것에 이름을 하나 더 새길 이유는 결코 없었다. 일주일 일정으로 네팔을 다녀올 예정이다. 작년 여름 고르카 지역의 학교에 짓고 있던 교실이 완공되었다. 기존의 비가 새는 교실을 수리하는 문제를 의논하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새로운 교실은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작년 여름, 가지고 있던 고가의 오디오를 정리하면서 가장 의심이 많은 것이 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극의 소리를 찾는다는 사치는 끊임없이 오디오를 바꾸게 만들었고 갈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네팔 아이들의 손을 잡는 순간,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비싸지 않은 스피커에서도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구태여 새로운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갈증은 쉽게 해소되었다.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그런 꿈을 꾸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강한 것만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들, 베풀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들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쓸 것인가를 두고 많이 망설였다.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지만 행여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끔 선한 마음만으로는 세상을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조금씩 나누고 그것에서 기쁨을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다.
두 시간을 넘게 맨발로 걸어 학교에 오는 아이들, 교실이 없어 비가 오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한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다는 비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쉰의 나이를 넘어선 이 봄에 이제 겨우….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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