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용기 있는 소녀에게

빈아! 서울의 병원 생활은 어떠니? 엄마, 아빠가 곁에 계시고 그쪽 의사 선생님이 뇌종양 분야에서는 훌륭한 분이라서 안심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바보같이 빈이 걱정을 한단다. "선생님은 꼭 걱정쟁이 같아요"라고 네가 놀릴 것 같구나. 밥은 잘 먹는지, 머리는 아프지 않은지, 감기로 고생은 하지 않는지. 지난번 수술할 때처럼 기관지 관을 새로 갈 때 피를 흘리는 일은 없었는지. 서울까지 가서 힘든 수술을 다시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낫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는지, 마음이 쓰인다.

빈이가 7시간이나 걸리는 머리 수술을 해야 하고, 기관지를 절개한 관으로 하루에 몇 번씩 가래도 뽑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아직도 남아 있는 머리 속 암 때문에 항암제도 먹어야 하는 지금이 무척 힘든 고비라는 것도 알고 있단다. 그래도 지난번 서울 갔을 때, 수술하고 사흘밖에 안 됐는데 벌써 말소리는 또박또박해져 있고 손 떨림도 확실히 좋아져 있었어. 빈이에게 설명할 수 없는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어. 약속대로 다시 대구로 돌아올 때는 걸어서 올 수도 있겠다싶어.

빈아! 지난가을에 함께 동물원에 간 거 기억나니? 휠체어 3대에 응급차까지 갔었지. 소풍 온 학생들이 동물은 안 보고 우리를 쳐다봤을 정도였으니까 대단했지. 오랜만에 코끼리도 보고, 관리 아저씨 몰래 원숭이한테 과자도 던져줬잖아. 기념으로 산 핑크색 돌고래 풍선은 한참 동안 네 병실을 장식했다. 그날 이후 너는 부쩍 좋은 쪽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어. 콧줄을 빼고 밥을 먹기 시작했고, 말도 하기 시작했지. 팔과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하루하루가 달랐어. 기적처럼 모든 것이 좋아져서 다시 머리 수술을 하기로 결정됐을 때, 선생님은 정말 꿈만 같았다.

213일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있으면서 동물원도 가고 아이스크림파티도 하고, 과자도 굽고 했던 추억을 잊지 말았으면 해. 네가 좋아져서 너를 보내야만 했던 날에야 비로소 우리가 끝이 안 보였던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순간도 힘든 적은 없었다. 네가 불러 준 '강남 스타일'도 그 행복에 한몫 단단히 했지.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소녀 우리 빈이! 인생을 말하기는 어린 나이지만, 넌 벌써 삶의 한가운데 우뚝 서서 누구보다 씩씩하게 가고 있단다. 선생님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것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빈이에게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어. 사랑해.

(2012년 7월 호스피스병동으로 입원한 12살 된 뇌종양 환아가 다행히 호전됐다. 이 글은 2013년 2월 호스피스병동을 퇴원해 신경외과에서 재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아에게 보낸 편지다.)

김여환<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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