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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죽음이 중단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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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아무도 죽지 않기 시작했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어야 할 사람들도 새해 아침 이후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도, 불치병에 걸려도 그 상태로 멈춰버렸다. 목이 댕강 끊어져도 살아있고, 100살이 넘어 뼈만 남은 말기 암 환자도 살아야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 속 이야기다.

'둘 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을 찾아오는 시골 의사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친절하게 치명적인 약을 주사하는 것이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죽음은 한 걸음 물러나 다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자리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 직전의 가족을 둔 사람들은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음이 중지된 나라의 국경을 넘는다. 캄캄한 밤 국가 감시를 피해 눈물을 머금고 리어카를 탄다. 국경을 넘자 그들은 죽는다.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중에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본인이 아닌 가족들의 뜻으로도 중단할 수 있게 하는 법적인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은 치료 불가능한 상태에서 심폐 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부착, 항암제 투여 등 효과 없는 의료 집착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는 얼마 전 가족에 의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을 법제화하는 데 대한 최종 합의안을 마련했다. 가족에 의한 대리 결정은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전원 동의로 한정했다. 평상시 환자의 말을 바탕으로 연명 치료 중단 의사를 추정하는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 법제화까지 여러 과정이 남아있다. 특별위는 공청회에서 여론 수렴을 거쳐 잠정 합의안을 확정한 뒤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하고,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6월 말까지 제도화의 필요성과 요건을 합의해 정부에 권고하며, 보건복지부는 이를 바탕으로 관련법 제정에 착수한다.

이번 움직임은 2009년 대법원이 뇌사 상태였던 김 모 할머니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계기가 됐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사상 첫 판결이었다. 하지만 앞서 2004년엔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 가족의 요청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가 살인 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 의사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암암리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도 했다. 뇌사 상태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작은 병원으로 옮긴다며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고 앰뷸런스에 태운다. 병원을 오가는 사이 의료 사각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이 법제화되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종교계, 특히 천주교는 본인 의사에 의한 연명 치료 중단은 동의하지만 타인 의사에 의한 치료 중단의 경우 안락사나 조력에 의한 자살 등 부작용 위험이 있다며 반대한다.

한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가 들려준 이야기다. '무남독녀의 사위가 장인의 말기 암을 상담하러 왔다. 의사 소견서상 말기가 아닌데 계속 그렇다고 우겼다. 통증이 심해 일단 입원시킨 뒤 소견서를 쓴 대학병원에 문의했다. 역시 말기가 아니었다. 치료하면 연명할 확률이 있었다. 결국 환자 사위와 싸웠다. 사위는 불효자로 의심해서 기분 나쁘다고 화를 냈다. 대부분 보호자는 말기가 아니라면 기뻐하는데 그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 퇴원 후 환자는 병동에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오곤 한다.'

한 설문 조사에서 말기 암 환자 대부분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죽음을 맞는 것보다 평소 지내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도 거의 대부분 반대했다.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법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법은 누군가에 의해 악용되거나 남용되기 마련이다. 가령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법'이 생겨도 예외일 수 없다. 물론 죽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인 만큼 시간이 걸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죽음을 도모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죽음이 중단된 나라'를 만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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