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김부겸 前 의원

"내 평생의 화두는 상생, 한반도 문제 해법 공부하러 미국 갑니다"

"(내 정치의) 근본은 상생이다. 제정구 전 의원이 돌아가시면서 내게 준 화두가 바로 상생이다. 이념 대결의 시대에는 내 논리에 충실하고 내 지지층만 잡으면 됐다. 1997년 제 전 의원이 돌아가시면서 '이제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이든 내부의 갈등이든 서로 공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그런 정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항암투병을 하던 그는 죽음을 앞두고 지나가다 만나는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달리 보이더라며 나보고 정신 차리라고 조언했다. 그 당시까지는 민주화 운동이나 반정부 투쟁만 뚜렷하다면 정치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어느 순간 제 전 의원의 말을 생각해보니 두려워졌다.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 뒤부터 '상생'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상대편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 그랬더니 '투쟁성이 부족하다'느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 TK출신이라서 안 된다는 등의 갖은 욕을 다 먹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그런 고집으로 정치판에서 버텨왔다."

김부겸의 정치는 상생의 정치다.

지난해 총선에서 불쑥 지역주의의 강고한 벽을 깨겠다며 수도권을 떠나 대구에서 출마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추구하는 상생을 실천하는 길이었다.

이제 그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초청을 받아들여 오는 6월 20일 미국으로 떠난다. 애초에는 1년 정도 연수할 계획이었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등의 정치 일정에 발이 묶여 6개월로 연수기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으로서 내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도외시할 수 없어서'기간을 줄였다.

그는 이곳 SAIS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북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북한이 심상치 않다. 북한은 지금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김정일이 국제사회를 알고서 게임을 했다면 지금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전혀 아니다. 북한의 내부에 어떤 변화와 문제가 있는지 미국과 중국은 조금이라도 알 것이다. 그쪽 전문가들을 만나 어깨너머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여기에서는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진영논리'에 갇혀서 사고하고 발언해야 한다. 이래 가지고는 문제를 정확하게 볼 수가 없다. 정치인으로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김부겸의 미국연수는 정치인으로서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 쪽에서도 김부겸을 영입 대상 0순위로 꼽고 있다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로서는 이번 미국행은 그동안 몸담고 있던 민주당의 틀에서 벗어나 그가 추구해 온 '상생의 정치', 새로운 정치를 모색할 기회인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에는 고민의 흔적이 드러난다. 자신이 오해받아도 해야 할 부분과 우리 사회 내부에서의 남남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서 밀어붙여서는 오히려 효과가 없겠다는 그런 고민도 드러난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 고민보다는 자신의 정책적 의지로 밀어붙인 성격이 더 강했다. 임기 말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10·4 남북공동선언'이 나왔지만, 실효성을 얻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한 6·15공동선언 때는 우리 국민 모두가 흥분했다. 엄청난 일을 진행하면서 국민 설득을 주거니받거니 하며 풀어나갔다. 그 당시 김정일도 꽤 국제사회에 대해 제스처를 많이 취했다. 그런 것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나 스스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정치를 하는 한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 됐다."

-6개월 후에 돌아오게 되면 세상이 바뀌어 있을까 김부겸이 더 바뀌어 있을까.

"6개월 동안 어영부영 놀다 올 생각은 없다. 기회가 있으면 중국도 갔다 올 작정이다. 중국사람들도 문제를 부분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섰다. 열린우리당 대표단으로 중국에 가서 중국 지도부를 만나 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보다도 훨씬 중국이 세지고 역량도 강화된 것 같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발언도 많이 나오고 중국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뀐 것 같다. 한·중 양쪽의 이해 폭을 넓히는 것은 결국 교류다. 한·중관계도 질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6개월 후에는 대구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합류해야 한다. 그때쯤에는 야권의 전략적 합의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정당만으로는 어려울 것이고 안철수 지지세력도 정치적 세력을 이뤘을 것이고 시민사회도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다 합쳐도 쉽지 않은 정치구도다."

-대구시장에 직접 출마할 수도 있지 않은가.

"김두관식 정치는 하지 않는다. 이미 한 달여 전에 대구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선거가 있다고 해서 유리한 곳에 깝작거리면 대구시민들이 역시 당신도 마찬가지구나 하지 않겠나. 그런 짓은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대구에 내려간 것은 한 인간으로서 고향에 대한 도리다. 내려가서 분탕질만 벌이고 도망갈 수는 없다. 사내 대장부가 4년을 버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자꾸 내년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부추기면 어떡하는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 가는 것은 단지 한반도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서인가.

"연세대에서 한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동북아 다자안보 모델이었다. 그 당시 북미 간에 제네바 협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핵을 가지면 언젠가 통일이 되면 우리 것이 될 것이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국제정치라는 것은 그런 가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우리 상식에서는 안 맞는 행동을 하더라도 국제정치라는 큰 안목에서 보면 행보가 보이는 지도자였다. 핵을 개발하는 것도 제값을 주고 사달라는 그런 뜻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예측할 수 없어졌다. 이런 것에 대해 미국의 북한전문가는 어떻게 보는지 그들에게 직접 듣는 기회를 얻고 싶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패권을 놓고 경쟁적 관계에 있지만, 북한을 다루는 데는 중국과 미국, 대한민국의 입장이 다르다.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로 봐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민주당에서 두 번이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떨어졌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그것도 숙명이고 상생의 정치를 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책 없이 보수적인 논리만 재생산하는 그 세력이나 대책 없이 진보적 가치-내가 보기에는 진보도 아니다-를 과장하면서 대결만 부추기는 정치도 서서히 밑천이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나 대한민국의 공적인 가치를 위해 진지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 외면을 받고 있다.

"기득권을 해체해야 한다. 제1 야당의 기득권은 물론 정치 진입장벽을 새누리당과 나눠서 갖고 있다. 이런 정치 구도에서는 적당하게 본전만 하면 제1 야당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것은 정당으로서 직무유기다. 이래서는 안 된다. 특히 민주당이 취약한 지역에서는 정치가 왜곡되고 있다. 한 정치세력의 독점 구도가 30년 이상 가고 있다. 호남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을 치르고서 느끼는 것이지만 캠페인을 잘한다고 해서, 정치구도를 잘 짠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절대로 표를 주지는 않더라. 현재의 지도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겠다.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당한 모습은 정파적 반발일 수 있다. 그러나 지도부가 잘 새겨서 민주당이 가는 길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철수 세력에게도 뒤질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의 정치 세력화는 가능할 것인가.

"안 의원이 지도자로서 부족한 면이 많지만 왜 꺼지지 않는 봉화처럼 솟아오르는가. 그것은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태워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분노와 불신, 절망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10월 재보선은 여야보다는 야권 내에서 정치적 주도력을 누가 가질 것인가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냉정할 것이다.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새누리당이 독점하는 정치구도를 흔들 가능성을 만드는 것은 야권 정치인의 의무다. 야권이 희망을 만들어 내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는데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싸움질만 하고 있다. 그것을 국민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야권 전체가 현재의 수준과 역량으로는 국민에게 매력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구경북에 가보니 어떤지.

"잘 내려갔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대구경북이 다른 지역과의 경쟁을 두려워하거나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 전화 한 통으로 권력 내부와 닿았다는 허위의식 정도는 극복해야 한다. 대구경북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에 수도권에서는 전혀 관심을 갖거나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 대구경북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모두 다 내놓고 토론해 봐야 한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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