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주방에 불이 켜지고 솥단지 속으로 어제보다 세 배로 많은 쌀들이 쏟아진다. 도마 위에는 야채들이 이리저리 뒹구는 사이 솥단지 속에 갇혀 있는 쌀들이 비좁아 숨을 쉴 수 없는지 서너 번 추가 돌아가더니 서버렸다.
어, 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밥은 잘 되었겠지. 바쁘게 상을 차려놓고 현관을 나온 나는 22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집결지에서 형님들을 만나 울진으로 떠나는 길. 아까시 향기가 창문을 내리게 만들었고 푸르름이 깊어지는 산하는 안정제로 마음까지 편하게 해준다.
시시콜콜 농담 섞인 형님들 넋두리는 양념에 잘 버무려진 맛깔스런 얼갈이배추처럼 들을수록 아삭함을 더해간다. 흥해에서 애교 많은 손아래 동서가 동승하자 소쩍새 울음소리에 보리가 익어가듯 우리들 이야기도 무르익었다.
몇십 년 만에 찾아온 자유 시간을 잘 소비하기 위해 숙소에 짐을 두고 약 600여 년 전 발견한 자연온천수가 샘솟는다는 원탕에 가서 족욕이나 할까 하고 걷던 길섶에 취나물이 보인다. 나물 한 줌을 채취해 저녁 찬으로 곁들여 먹고 나니 하루의 피로가 몰려온다.
다음 날, 우린 온천을 시작으로 하루 여정을 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후 3시경, 메시지가 자꾸 날아온다. "언제 집에 오노?" "몇 시쯤 도착이고?" "하루 종일 라면 먹었는데 또 라면."
그때야 버스정류장 건너편에서 잘 갔다 오라며 손 흔들어 주던 남편과 아들이 주방장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언니 같은 형님들이랑 함께했던 1박 2일, 꿀맛 같은 시간이 지나간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우리 가족 이야기' 코너에 '나의 결혼이야기'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스럽거나 힘들었던 에피소드, 결혼 과정과 결혼 후의 재미난 사연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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