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년째 사지마비 남편 간호…결혼이주여성 노사리오 씨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노사리오 씨가 병원에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노사리오 씨가 병원에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

"남편이 뇌를 다쳐 사지 마비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지만 잘 보살펴줘야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키우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대구 수성구 두산오거리 근처 한 요양병원 3층 중환자실.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노사리오(45) 씨가 가운을 입고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처럼 살아가는 남편(52)에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시원한 감을 느낀 남편은 고마운 마음에서인지 눈을 껌벅거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부인 노사리오 씨도 고개를 꾸벅이며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고는 남편의 복강 튜브를 통해 식사로 영양우유를 집어넣어 주었다. 노사리오 씨는 혹시나 남편의 건강이 회복될까 봐 정성껏 팔'다리도 주물러주었다.

뇌를 다쳐 9년째 사지 마비로 식물인간처럼 살아가는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는 노사리오 씨. 그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2001년 한국에 시집왔다. 그러나 얼마 후 남편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주위 다문화가정들도 그녀의 꿋꿋한 삶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 때문에 너무 속상해 눈물만 흘렸어요. 어린 딸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내 인생은 운명의 장난이었나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남편은 2004년 길을 걷다 넘어져 뇌 손상을 당해 수술만 4차례 받았다. 수술을 한 머리 두개골은 손바닥 만하게 함몰돼 있는 상태다. 처음에는 신체 반쪽만 마비 현상을 보이다 1년도 안 돼 전신마비가 왔다. 현재 병원 의료진은 남편이 사지 마비에 언어장애로 의사소통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병원 측에서도 합병증 예방을 위한 약물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간혹 몸 컨디션이 좋으면 재활치료를 병행하지만 회복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범물동 용지아파트에 사는 그는 매일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등교시키는 게 유일한 낙이다. 딸은 아빠가 병상에 누워 있어도 표정이 밝기 때문이다. 그는 힘겨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3년째 남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육류포장일을 하고 있다. 일을 마치는 길에 병원에 들러 남편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간호하는 게 일상화됐다.

"딸과 함께 남편을 찾아가면 남편이 무척 좋아해요. 남편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딸을 보면 반가워서 입을 버벅거리며 몸부림까지 쳐요. 딸을 한 번 안아볼 수 없으니 눈물만 글썽여요."

노사리오 씨는 남편이 병상에 누운 이후 2006년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 됐다. 매달 정부지원금과 공익단체 후원금 일정액을 받고 있다. 남편 입원비는 정부에서 지원되고 매달 간병인비, 기저귀 비용 등은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딸이 희망이고 삶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라 했다. 예쁜 공주만이라도 훌륭하게 키워 아빠 몫까지 살게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노사리오 씨는 필리핀 작은 농촌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8남매의 둘째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도 포기했다.

"정이 많고 따뜻한 한국사회가 정말 고마워요.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간호해 보답하고 싶어요. 좀 마음이 안정되면 못했던 공부도 이어갈까 해요."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