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블랙아웃' 파고를 넘자] <중>잠자는 비상발전기 활용을

"전력 경보 발생 때 가동 의무화…생산비용 보전을"

대구시내 한 대형백화점은 2천㎸A 규모의 최신형 비상발전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유지 관리를 위해 전문 외부기관에 관리를 위탁해 수시로 점검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시내 한 대형백화점은 2천㎸A 규모의 최신형 비상발전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유지 관리를 위해 전문 외부기관에 관리를 위탁해 수시로 점검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 계약전력이 1천300㎾인 대구시내 10층 빌딩 지하 3층. 정전 사태를 대비해 500㎾용 비상발전기가 별도로 설치돼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한 지는 10년이 넘는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 때 정전 사태가 발생해 2시간가량 활용한 것이 가장 최근에 사용한 것이다. 당시에도 엘리베이터와 비상등 발전을 위해 사용했다. 매달 한 차례씩 10분 동안 시험 가동을 하고 있지만 설치한 지 30년이 넘어 노후해 작동 시 소음이 너무 커 사용을 꺼린다. 지난해 변압기 교체 때는 외부에서 발전기를 빌려서 사용했다. 해당 빌딩 관계자는 "노후하고, 연료도 많이 소비돼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다"며 "3년에 한 번씩 전기안전공사가 정기점검을 할 때 1시간가량 작동시킬 때를 제외하면 장시간 사용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2. 2011년 문을 연 대구시내 한 대형백화점. 계약전력 1만9천㎾를 사용하는 이 백화점은 2천㎸A 규모의 최신형 비상발전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백화점은 쇼핑 고객이 많은 데다 블랙아웃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비상발전기 관리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외부 전문기관에 계약을 통해 월 1회 오전 4시부터 7시까지 정전을 가정한 시운전을 하고, 주 1회 엔진 상태를 체크하는 무부하시운전을 실시한다. 이 때문에 실제 정전이 되면 20초 이내에 엘리베이터와 조명, 급배수시설 등이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유류탱크에도 항상 4시간 동안 비상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양인 2천300ℓ의 유류를 채워놓고 있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비상발전기는 정전이 되지 않으면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지만 정말 필요한 기계"라며 "각종 소모품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등 꾸준하게 관리하면 블랙아웃이나 정전 등 위기상황에서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블랙아웃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현재 무용지물이 되다시피한 비상발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비상발전기를 전력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사용토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무용지물 비상발전기

비상발전기는 한국전력 등 전력회사로부터 공급받는 상용 전원이 끊길 경우 조명, 공조, 급'배수, 엘리베이터 등으로 말미암은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 등 관련 법규에 따라 설치하게 돼 있다. 일반적으로 소방용 설비 등 비상용은 40초 이내에, 응급실과 수술실 등 의료용은 10초 이내에 전원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한전의 송배전 시스템이 안정화되고, 정전 등 전력 사고 빈발 정도가 줄어들면서 비상발전기 사용 횟수도 축소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상발전기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 실제 2011년 9'15 정전 대란 이후 전기산업진흥회 발전기협의체 회의에서 "9'15 정전 사태 때 비상발전기의 60% 이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3년마다 정기검사 대상인 75㎾ 이상의 비상발전기는 대구경북에 총 1천747호가 있다. 이 중 정기검사에서 불합격을 당한 건수는 2011년 86호, 지난해는 63호다. 대부분 노후로 인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상 작동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또 작동이 된다 하더라도 연료가 많이 들고, 소음이 너무 큰데다 원래의 용량만큼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상당 부분 노후된 탓에 불합격률이 많이 나오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전력난 해소에 큰 도움 안 돼"

정부는 전력난 해소를 위해 예비전력이 400만㎾ 미만으로 떨어지는 '관심' 단계로 접어들면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한국전기안전공사가 협조를 당부하고, 민간기관은 사용 전력량을 줄인 만큼 돈을 지원한다. 대상은 전년도 최대부하 시간대(여름철 오전 11시~정오, 오후 1~5시. 겨울철 오후 6~11시)에 300㎾ 이상의 비상발전기를 보유한 일반용 및 산업용 고객, 주간 전력수급상황을 고려해 시행기간 및 시간을 예고할 경우 한전과 약정한 고객이 부하조정시간 중 각 30분 단위의 평균전력이 고객기준부하(CBL)보다 평균전력을 10% 이상 또는 3천㎾ 이상 줄이는 경우 ㎾당 360~570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주간예고 수요조정제도'라 부른다.

하지만 참여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대구경북의 경우 이 제도에 참여 의사를 밝혀 한전과 약정한 민간기관은 402호이고, 공공기관은 65호. 민간기관은 그나마 지원금 제도가 있어서 참여율이 다소 높지만 인센티브가 없는 공공기관은 참여율이 크게 떨어지는 실정. 이달 5일 30℃ 이상의 무더위가 발생해 예비전력이 뚝 떨어지면서 '관심' 단계로 격상되자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경본부는 공공기관 65곳에 긴급하게 협조를 요청했지만 참여한 기관은 7곳에 불과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경본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에는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기관의 참여가 높아야 민간기관의 참여율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제도 개선을"

이처럼 비상발전기가 블랙아웃 상황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못하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건축법이나 소방법에 명시된 비상발전기 설치 규정을 전기 관련법으로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비상발전기에 대한 설치 의무를 엄격하게 하고, 블랙아웃 우려가 발생할 때 비상발전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 지금처럼 설치만 해 놓고 사용하지 않으면 고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대경본부 관계자는 "현재 비상발전기의 경우 안전성과 경제성에서 크게 떨어지고, 제도적으로 설치 및 운영 규정도 느슨해 블랙아웃 상황에서는 크게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 민간전력 전문가는 "비상발전기를 워낙 사용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돼 가고 있다"며 "비상발전기를 하루 종일 사용해도 기계상으로 큰 문제가 없다. 장기적으로 비상발전기 사용을 일상화시켜서 블랙아웃의 파고를 넘는 대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비상발전기를 예비발전기로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일신전기 이용학 대표는 "비상시가 아니라 전력난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비상발전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예비발전기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또 비상발전기에 계량기를 달아서 사용한 비용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면 한전이 비싼 값에 사주듯이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면 최소한 기름값은 보상해줘야 기관들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