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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안전, 주민들이 직접 '진짜' 주민자치 첫발 뗀다

읍면동 주민자치회 이달부터 시범실시

방범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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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다 장터
아나바다 장터
대구 고산=고산2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올해 초 연 신년교례회
대구 고산=고산2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올해 초 연 신년교례회'주민화합의 밤.

미국의 '커뮤니티 보드'(Community Board'주민자치회)는 주민 의견을 수렴, 자치단체장에게 건의하는 기능을 하지만 권한이 막강하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하는 위원들의 의견이 대부분 행정에 반영된다. 말 그대로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999년 읍'면'동 기능 전환을 통해 주민자치센터를 신설하고,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해 주민자치 실현에 나섰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자치기능 강화보다는 문화'여가 및 교육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돼 온 게 사실이다. 이 같은 평가에 따라 정부는 이달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에 들어갔다. 기존 주민자치 활동의 업그레이드에 나선 마을들을 찾아봤다.

◆주민 스스로 지역공동체 문제 해결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문제를 논의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생적 민'관 협력의 근린자치 모델이다.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의 경우 지역 대표성과 자치역량이 부족하고,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풀뿌리 지방자치를 더욱 강화하자는 게 핵심 취지다.

주민자치회 시범운영은 7월부터 전국 31개 읍'면'동에서 이뤄진다. 전국 3천482개 주민자치센터 가운데 1% 수준이다. 이에 앞서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4일 전국적 공모를 통해 신청한 166개 읍'면'동 중에서 민관 합동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31곳을 시범지역으로 최종 선정했다. 경기도 5개, 충남 4개, 광주 3개 등이며 대구'경북은 각각 1곳씩 포함됐다.

안전행정부는 공모를 하면서 주민자치회의 유형을 7개로 제시했다. ▷안전마을형 ▷지역복지형 ▷마을기업형 ▷도심창조형 ▷지역자원형 ▷평생교육형 ▷다문화 어울림형 등이다. 신청 지역은 지역 특성에 맞게 7가지 유형 중 하나 혹은 복수의 유형으로 지원했다. 정부는 2014년 하반기까지 시범운영하는 동안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보완 과정을 거친 뒤 이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주민자치회의 가장 큰 특징은 행정에 대해 사전 협의할 수 있고 위탁업무, 주민 고유 업무 등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지자체는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할 때 주민자치회를 참여시키고, 노후지역을 개선하거나 혐오시설을 설치할 때도 주민자치회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또 주민자치회는 마을도서관이나 공원 등 공공시설물을 직접 관리하고, 마을소식지 발간 등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주민자치위 위원은 읍'면'동장이 위촉해왔지만 주민자치회 위원은 시'군'구 단위 위원선정위원회에서 공개모집 등을 통해 20~30명 정도를 선정한 뒤 지방자치단체장이 위촉한다. 특히 기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받은 수강료를 재원으로 삼은 반면 주민자치회는 공공시설 위탁사업이나 자체 수익사업 등으로 재원을 확보한다.

안전행정부 자치제도과 관계자는 "주민자치회 중심의 지역안전공동체, 지역복지공동체 등이 구축되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자주적인 행정 참여는 보다 성숙한 지방자치를 위한 새로운 계기"라고 했다.

◆대구 고산2동'안동 강남동 시범실시

금호강과 대구스타디움을 품고 있는 대구 수성구 고산2동은 도농(都農)복합지역이다. 9천700여 가구, 3만여 명의 주민 가운데 75% 이상이 아파트단지에 살지만 면적은 농촌생활권이 89%를 차지한다. 수성의료지구 개발로 미래지식기반산업 중심지 도약도 기대되고 있지만 수성구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넓어 범죄'화재에 대한 초기 대응은 취약하다. 또 노인 인구의 증가로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여름철이면 집중호우'하천 범람에 따른 농작물 피해도 잦다.

이에 따라 고산2동은 올해 안전행정부의 '읍면동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지역 공모에서 '안전마을형'으로 응모했다. 지역의 안전 위해요소를 주민이 스스로 관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여덕찬 고산2동장은 "8월 중 구의회에서 조례가 제정되면 주민자치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월별로 안전 관련 1개 주제를 정해 주민자치회, 관련단체와 합동회의를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고산 안전마을망'을 구성한다는 방침을 이미 세웠다. 지역 실정에 밝은 주민들의 공동 협력으로 '범죄예방 마을' '교통안전 마을' '재난안전 마을' '농작업안전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자치회는 자율방범대와 합동 순찰을 실시하고, 노인'보행자 통행 위해요소를 조사한 뒤 개선을 행정당국에 건의하기로 했다. 또 팔현마을 등 자연부락에 단독경보형 화재감지기 설치를 지원하고, 농약'농기계 안전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범죄 취약 유휴공간에 주민쉼터 조성, 교통시설물 점검, 수해취약시설 감시활동 등도 추진한다. 황선우 고산2동 주민자치위원회 간사는 "고산동은 농촌 정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사회 네트워크'공동체 회복의 구심체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기존 자치위원 외에 새로운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신도시와 기존 농업'공업지역이 공존하고 있는 안동시 강남동은 마을기업형과 지역복지형이 결합된 주민자치회를 지향한다. 수익창출 모델 제시와 내실 있는 운영을 통해 주민자치회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법규에 의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복지혜택을 주겠다는 게 기본계획이다.

강남동은 이와 관련, 매주 목요일 주민센터 앞에서 '강남 장날'(파머스 마켓)을 열기로 했다. 동네 790가구의 농가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적정 수수료를 붙여 주민'식당에 판매해 수익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 4, 10월 등 연간 2차례 '아나바다 장터'를 운영할 예정이다. 가정에서 쓰지 않는 중고제품이나 기업의 재고품'이월상품이 판매 대상이다.

안동시청 최종익 주무관은 "온라인 장터를 구축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속적 연결을 도모하고, 아나바다장터에서는 구매자의 사용 편의를 위해 수선봉사단도 운영할 것"이라며 "수익금은 매년 연말 또는 긴급 지원이 필요한 때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웃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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