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모로고로주 팡가웨 마을은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에서 서쪽으로 175㎞ 떨어진 외딴 마을이다. 교통 정체가 극심한 다르에스살람을 빠져나와 구불구불 이어지는 2차로를 4시간가량 달려야 한다. 400여 가구에 주민 2천7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식수도 우물에 의존한다. 때마침 건기여서 마을 안에는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황톳빛 먼지가 피어올랐다.
팡가웨 마을은 라게자무엔도와 카티, 마젠고, 주, 응공고로 등 5개 부락으로 구성돼 있다. 라게자무엔도와 카티, 마젠고 마을은 무슬림 주민들의 비중이 높고, 응공고로는 기독교 신자가 많은 편이다. 유실수 농장은 라게자무엔도 마을 인근에, 시범농장은 응공고로 부락에 조성됐다. 두 부락 사람들은 서로 품앗이를 하듯 노동력을 제공하며 돕고 있다. 이 마을에는 지난 2010년부터 새마을회관 정비와 주거환경개선, 공동 농장 운영, 재봉틀 등 여성 교육, 유실수재배, 기계화 영농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됐다.
◆현지에 최적화된 영농으로 희망 찾아
팡가웨 마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사업은 공동 농장 운영이다. 2ac(에이커) 규모의 농장에서는 토마토와 양파, 해바라기 등 밭작물을 기르고 있다. 농장은 주변 현지인들의 농장과 확연히 달랐다. 밭둑을 만들고 잡초를 뽑아내 깔끔했다. 토마토에는 지지대를 세웠고, 양파도 야자잎을 활용한 육묘장을 만들어 모종을 키워 옮겨 심었다. 연중 농사가 가능한 점을 활용해 수확시기에 차이를 두기 위해 시기별로 나눠 심었다. 비에 의존하지 않고 산 위 계곡에 3천ℓ 규모의 물탱크를 설치하고 1㎞가량 도수관을 연결해 물을 취수한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밭 형태지만 탄자니아 현지와는 큰 차이가 난다. 탄자니아의 농지는 들판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잡초투성이다. 종자의 품질이 낮은데다 제초 작업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마토도 순지르기를 하지 않고 지지대도 없이 땅 위에서 토마토가 열리도록 방치했다. 이 때문에 병해충이 잦고 알이 작으며 수확량이 적다. "처음에는 토마토의 순지르기를 왜 하는지 주민들이 이해를 못 했어요. 꽃이 피면 토마토가 달리는데 왜 떼어내느냐는 거죠. '우갈리를 여러 명이 나눠 먹으면 배가 덜 부르지 않느냐. 토마토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이해를 하더군요." 농장을 담당하는 김영관(59) 단원이 설명했다.
한국식 농업을 탄자니아 실정에 맞게 접목하면서 작물의 굵기가 두 배 이상 커졌고, 수확량도 크게 뛰었다. 지난해는 0.25ac에 토마토를 심어 80만Tsh(탄자니아실링)의 소득을 올렸다. 현지에서 같은 면적에 심은 토마토의 생산 소득인 10만실링에 비해 8배나 뛴 셈이다. 농장의 토마토가 크고 단단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도매상들이 농장으로 찾아와 매입하고 있다. 소득 중 10%는 마을 전체 공동기금으로 적립했고, 10%는 종자 구입과 살충제 등을 구입하는 재투자 비용으로 사용했다.
올해는 토마토와 양파 밭에서 각각 200만실링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주민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일하는 시간까지 정해줘도 늑장을 부리던 주민들이 요즘에는 자체적으로 요일별로 순번을 정해 물을 주고 순지르기를 한다. 인근 농장들도 새마을농장의 재배 방식을 따라하는 등 점차 확산되고 있다. 다른 마을의 농업기술자가 방문해 농장을 둘러보고 잎마름병의 대처 방법과 순지르기 방식 등을 알아보기도 했다. 김영관 단원은 "자질을 갖춘 지도자를 발굴하고 주민들의 의욕을 높이되 봉사단원들이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지화를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실수 보급과 아동 급식으로 생활 개선
팡가웨 마을의 산림은 황폐화된 지 오래다. 농지가 부족한 주민들은 나무에 불을 질러 고사시킨 뒤 넘어뜨려 산림을 개간한다. 완전히 나무를 죽여버리기 때문에 산림은 영구히 황폐화된다. 더구나 팡가웨는 우루구루 산맥의 영향으로 연중 고온 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토질도 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금세 지하로 스며든다. 관정을 파면 물이 나오지만 염분이 강해 식수로는 쓸 수 없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새마을봉사단은 산림녹화 사업의 일환으로 유실수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 인근 야산 4㏊를 구입해 망고나무 1천400주와 바나나 100주를 심었다. 망고는 올해 11월부터 수확이 가능할 전망이다.
마을에는 농기계도 갖추고 있다. 트랙터 2대와 경운기 3대, 원반쟁기 2대, 잼배 2대, 옥수수 직파기, 탈곡기 등 한 달에 50만~100만㎡를 경작할 수 있는 장비다. 3년 전부터 농기계 작동법을 배운 주마은네 쇼마리(28) 씨는 "경운기가 마을에 생기면서 농사는 물론 이동수단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더 기술을 배워서 농기계 기술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마을 회합장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진행하는 단체급식을 받기 위해서다. 새마을청년회가 나서 어린 순으로 줄을 세워 손을 씻겼다. 부녀회원들은 정성스럽게 지은 쌀밥과 칸데(옥수수와 콩을 조린 음식)를 접시에 가득 담아 나눠줬다. 아이들은 모랫바람이 날리는 바닥에 그대로 앉아 허겁지겁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이날 모여든 아이들만 300여 명.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나쁜 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데 열 살도 안돼 보일 정도로 성장이 늦다. 급식은 그나마 영양 균형을 맞추는 수단이다. 마을회관 옆에는 황무지를 개간해 옥수수와 토마토, 음치차 등을 심어 급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팡가웨 마을에서는 봉제 수업을 통한 소득 증대 사업과 열악한 마을 집을 고쳐주는 주거환경개선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해가 어둑해지는 오후 7시가 되자 마을 보건소 앞에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격주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평생 마을에만 머무는 주민들에게 영화는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이날 스크린에는 한국 영화 '최종병기 활'이 상영됐다. 스와힐리어 자막은 없지만 무협 액션 장면에는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탄자니아에는 추노나 주몽 등 한국의 무협사극이 자주 방영돼 인기가 높은 편이다. 장선과 봉사단 팀장은 "코이카(KOICA)와 한국농어촌공사가 진행하는 농촌종합개발사업에 주민들이 몰리면서 새마을운동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다시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지속적인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탄자니아 모로고로에서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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