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유난히도 많던 겨울,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고혈압'당뇨병교육센터인데 남편을 바꿔달라고 했다. "병원 오는 날이 많이 지났는데 잘 계신지 궁금하다. 꼬박꼬박 다녀야 심장병, 뇌출혈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이제서야 그런 이야기를 해주느냐고, 알지도 못했다고 통곡하며 울었다. 간호사 아가씨는 "죄송합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을 추운 산에 두고 온 지 며칠 안 된 날이었다. 고혈압, 당뇨도 있는데 좋아하는 술 한잔 먹고 자다가 뇌출혈로 혼자 쓸쓸히 떠났다.
며칠 지나 자꾸 물을 마시게 되고, 살도 빠져서 병원에 갔더니 혈당이 많이 높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혈당 조절약을 먹는 것을 잊어버린 지 한참 지났다. 나중에는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사라면 진저리가 나서, 그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혼자 계시지 말고 센터에 한 번 오세요"라고 했다.
친절한 선생님들도 있었고, 서점처럼 고혈압과 당뇨병 관련 책이 무척 많았다. 누구나 책을 보거나 혈당이나 혈압을 스스로 잴 수 있는 편한 곳이었다.
고혈당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혈당도 생길 수 있단다. 당뇨환자는 발톱을 잘 깎아야 하며, 발 관리하는 법도 배웠다. 합병증 예방을 위한 정상 혈당을 유지하는 우리나라 당뇨 환자는 10명 중 3명도 채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병원 가는 날은 아침에 혈당을 재고 센터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책도 읽는다. 꼭 여고 시절 같다. 내 손가락을 찔러 당을 잴 수도 있다. 정상 혈당을 맞추려고 운동과 식사요법도 배운 대로 열심히 따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주 악몽을 꾸고 식은땀으로 이불이 젖는 날이 잦아졌다. 병원에 갔더니 "혈당이 조절이 잘 되면서 저혈당이 있는 것 같다"며 저녁 약을 없애주었다. 혈당은 참 변화무쌍하다. 화를 냈다가 금방 웃어주는 변덕쟁이 같다.
"남편은 먼저 가셨지만 당뇨는 평생 함께 가야 하니 잘 달래서 말 잘 듣는 친구로 만드세요"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남편을 찾는 전화 한 통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오늘도 내가 기른 토마토와 도시락을 싸서 센터로 소풍 간다.
자료 제공=대구시 고혈압'당뇨병
광역교육정보센터 053)253-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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