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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칼럼] 탈세와 공짜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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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인수위원회 발족 이후 지난 7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짜낸 세제 개편안이 중산층의 집단 반발에 떠밀려 단 4일 만에 좌초했다. 당'정'청이 머리 맞댄 세제 개편 원안은 불경기로 주머니가 얇아진 '적자 중산층'의 심리 파악도 못 한 채 연 16만 원 더 거둬서 쉽게 재정을 확충하려다가 지지층의 14%(한국갤럽, 8월 16일 조사)를 잃는 대참사로 끝났다. '그 정도인 줄 몰랐다'는 유체 이탈 화법의 박 대통령으로부터 원점 재검토를 지시받은 세제 개편 원안은 멀쩡한 국민만 꽥꽥거리는 거위로 만들고는 하루 만에 과세 기준선을 연소득 3천450만 원에서 5천500만 원으로 2천여만 원 끌어당기는 졸속 성형을 당했다. 부과 기준선을 너무 끌어올리는 바람에 세수가 4천억 원이나 덜 걷히게 됐다고 울 수도, 연간 십수만 원 아끼게 됐다고 웃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자칫하면 임시로 봉합한 실밥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이달 12, 13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671명을 대상으로 세제 개편안을 두고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절반(50%)의 국민은 1년에 20만 원 정도 더 내더라도 복지 확대를 찬성했다. '복지=세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1년에 20만 원'을 더 내겠다는 찬성파가 반대파(39%)보다 11%나 더 많았다. 그런 착한 민심이 돌아섰다. 납세에 관한 한 가장 양심적이고, 운신의 폭이 좁은 월급쟁이들에게만 세금 보따리를 안겼기 때문이다. 대다수 가정이 세금처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교육비'의료비마저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 대신 세액공제로 깐깐하게 휙 바꿔버렸다. 아무리 세제개편 수정안에서 과세 기준선을 5천500만 원으로 올려도, 교육비 의료비를 세액공제로 바꿔버리면 1년에 수십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봉급생활자들에게 13월의 보너스로 작은 숨통을 틔워주던 신용카드 소득공제액마저 15%에서 10%로 축소됐다. 조세 전문가인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아프지 않게 깃털을 뽑아주겠다고 염장 지른 것은 약과이다. 과세의 불공정성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노무사 감정평가사 등 고소득 전문직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연간 4천800만 원 이하만 면세자이지만, 십수억씩 버는 자영업자들은 대개 가족 명의로 회사를 몇 개로 쪼개고 가른다. 면세 혜택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서다. 그나마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는 양반이다.

지하경제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전문가인 프레데릭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요하네스 케플러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6.3%가 음성적으로 움직이는 지하경제이며, 지하경제의 44%를 자영업자들이 좌우한다고 보고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도 일부 카드를 긁고 대다수 현금으로 거래하면 탈세로 이어진다.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는 국숫집 사장은 벤츠 트렁크에 국수 맛국물을 넣고 다니면서 세금 한 푼 안 내고,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는 월급생활자들은 100% 세금 떼이고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 남대문이나 동대문 두산타워 한두 평자리 옷가게 사장들은 BMW 타고 다니지만 현금영수증을 떼지는 않는다. 강남의 성형외과는 수술비를 현금으로 내면 깎아주고, 미장원이나 목욕탕도 대부분 영수증을 끊어주지 않는다.

공청회에서 본 장관들의 재테크는 불'탈법을 오가고, 기업체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귀족 노조는 일자리 세습에 억대 성과급을 요구하며, 연간 1억 4천500만 원의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37명은 1년에 단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 2천500만 경제활동인구의 절반가량인 1천150여만 명(전 국민의 23%)이 소득세를 내는데도 말이다. 이런 모순을 시정하지 않은 채 불쌍한 월급쟁이들에게만 세금을 더 내라니 조세 저항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을 골고루 잘살게 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복지 비용을 늘리려는 정부의 시도는 당연하고 또 감수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공평하지 않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국가가 돈 잘 버는 '그들'에게는 징세하지 않고, 불경기라 찬바람 쌩쌩 부는 내 주머니 돈을 뺏어가려 하는 것 같으니 저항하는 것이다. 도시 취업자의 29%가 종사하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징세의 길, 스웨덴처럼 하면 간단하다. 스웨덴 이발사들은 1만 원짜리 이발을 하면, 부가세 25%를 붙인 1만 2천500원짜리 현금 영수증을 포스로 발행한다.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으면 탈세범으로 고발당한다. 스웨덴은 우리나라 조세와 복지부담률(26%)의 2.5배인 67% 조세부담률에 25% 부가세를 내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조세 저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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