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2월 13일 중국 국민당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악마' 그 자체였다. 일본군이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오자 국민당 정부는 난징을 버리고 달아났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수도 난징을 지키겠다"던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도 야반도주했다. 탕셩즈마저 달아나자 그를 믿고 난징에 머물던 시민과 병사들이 고스란히 재앙을 뒤집어썼다.
일본군이 이후 6주에 걸쳐 저지른 만행은 나치보다 더했다. 이에 가담했던 한 일본군의 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심심하면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랜다. 산 채로 묻고, 장작불로 태우고,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기도 했다." 이 날짜 일본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은 두 일본군 장교가 누가 먼저 100인을 참살시키는지 시합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자들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어린이건 노파건 집단 강간, 선간후살(먼저 강간한 후 죽임)이 횡행했다.
중국인들은 이를 난징대도살이라 부른다. 이 기간 숨진 사람을 30만 명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일본은 양심적이라는 학자조차 이를 부정하려 든다. 심지어 난징대학살은 중국인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둘러댄다.
중국은 1985년 난징에 대학살 추모관을 세웠다. 해마다 추도식도 열고 있다. 이곳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 있다. 당시 12초마다 한 명의 중국인이 희생당했음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이곳 입구 여성 조각상엔 '달아나자. 악마가 온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는 이치가야기념관이 있다. 원래 일본군 대본영이 있던 곳이다. 패전 후에는 맥아더의 극동군사재판 법정으로 사용됐고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이 이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일본의 전쟁 책임을 왜곡하는 장소로 이용된다. 전쟁에 대한 반성은 없고 과거 일본제국의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뿐이다. 일본은 이런 기념관을 만들어 일본인들에게 그릇된 과거 인식을 강요한다.
중국은 일찍부터 추모관을 지어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상대로 일본의 악행을 가르치고, 일본은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 역사의 현장 왜곡도 불사한다.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에게 맡겨 두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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