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여름철 별미

신문쟁이로 3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버릇이 생겼지요. 그중 하나가 신문에서 좋은 기사를 보면 그 면만 쏙 빼내 모아두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될 것을 굳이 모으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래된 습관 때문이지요. 신문은 역시 종이로 읽어야 제 맛입니다. 여름철 선풍기에 신문을 펄럭펄럭 날려가며 읽는 맛이란 별미 중 별미입니다.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38선이 가까운 동해 쪽으로 갔었지요. 여행의 즐거움은 아무래도 맛있는 먹거리입니다. 맛집 검색에 나섰지요. 유명한 맛집들은 거의 수십 년 이상 된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냉방이 잘 안 된 곳이기도 했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길게는 한 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맛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매스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지요. 유심히 보니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젊은 층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이들은 땡볕에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도 찍고 즐깁니다.

내용만 좋으면 낡고 불편함에 신경을 쓰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살짝 놀랐습니다. 젊은이들이 낡은 식당 앞에서 땀을 흘리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문득 신문이 떠올랐지요. 종이신문은 구닥다리여서 젊은이들이 무조건 외면할 것이라는 단정도 잘못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최근에 136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신문 워싱턴포스트를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 닷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인수했습니다. 베조스는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아마도 그는 젊은이들을 신문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이미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종이신문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허름하고 푹푹 찌는 식당의 별미를 즐겨 찾듯이, 그들의 관심과 구미에 맞는 기사로 상을 차린다면 종이신문도 읽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베조스가 어떤 요리로 젊은 층을 공략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밥을 먹다 신문을 생각하는 것.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은퇴자들이 옛 직장을 쉽게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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