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의 줌인] 스크린 옮긴 스티브 잡스 눈물 빠뜨린 맥빠진 복원

'잡스' 전기 영화 어려움의 반면교사

# 대학 시절 히피적 사색 멋지게 그려

# 애플 복귀 후 위대한 성공·죽음 생략

# 영화, 감동도 독창성도 없이 어정쩡

스티브 잡스를 다룬 전기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 질문은 참으로 난해하다. 왜냐하면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이미 전기로 간행돼 많은 이들이 읽었기 때문이다. 읽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된 책 아닌가! 더구나 그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그것도 자신이 직접 초청한 CEO에 의해 자신이 해고된 기막힌 사연, 그 회사가 시장에서 죽어갈 때 복귀해 현존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사연, 그 영광의 순간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사연. 이 스토리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잡스'가 도무지 어떻게 영화화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한편으로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니,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부모에게 버림받아 양자로 입양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최고점에서 갑자기 사망한 시점까지. 만약 그렇게 만든다면, 한 편의 영화로는 부족하고 연작이 되어야 한다. 결국 전기 영화는 선택과 배제를 통해 인물을 형상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된 사건들을 어떤 시각에서 다룰 것인가? 전기 영화는 이 두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잡스'의 시작은 2001년 잡스가 아이팟을 발표하는 장면이다. 예의 청바지와 터틀룩의 티, 뉴발란스 운동화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무대를 왔다갔다하면서 신상품을 소개한다. 미국 음악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이 상품을 소개하는 무대를 통해 관객들은 잡스의 생전 모습을 쉽게 회상하게 된다.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프레젠테이션 장면, 그의 명연설, 그것을 영화는 재생하듯 복원해 낸다. 해서 관객들에게 쉽게 호소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발생한다. 왜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장면이 아니라 아이팟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것일까? 지금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애플의 상품은 누가 보더라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이다. 아이팟은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낡은 제품 아닌가?

영화로 돌아가자. 엔딩이 끝나면 화면은 잡스의 리드 대학 시절로 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잡스는 대학을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은 잡스의 대학 시절을 그린 부분이다. 히피문화가 존재하던 그 시절, 대학의 교육보다는 자연과 함께하며 창의력과 정신에 대해 고민하는 잡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 대학이 처한 위기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대학을 그만둔 잡스는 친구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색한다. 대학 생활을 이렇게 멋지게, 제대로 그린 영화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잡스의 삶의 원동력은 여기서 나온 것처럼 영화는 꾸민다.

이제부터 전기에 나와 있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리 탁월한 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기막힌 촬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절친 스티브 워즈니악과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창립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투자를 받아 거대회사로 키운다. 특유의 꼼꼼함과 승부근성으로 애플은 성장하지만, 그는 해고되고 만다. 그리고 11년 뒤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잡스'에서 주로 다루는 잡스는 대학시절부터 애플에서 쫓겨나기까지이다. 다시 복귀하는 장면은 러닝 타임상 그리 길지 않다. 결국 감독은 길게 봐도 20대에서 40대까지의 모습을 그린다.

이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왜 감독은 가장 화려한 시절인 복귀 후의 모습을 빼버린 것일까? 잡스에 대해 그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홍보 문구처럼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스티브 잡스, 아무도 몰랐던 그의 진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일까? 다른 의문? 그렇다면 20대의 잡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감독은 완벽주의자인 잡스가 의외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여친이 아이를 가졌을 때 냉정하게 외면하는 모습이나, 애플을 함께 만든 친구들에게 성공한 뒤 차갑게 대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많은 상처를 준 인물이라고,

결국 영화는 젊은 시절, 그 강한 지도력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거대 기업을 이룩한 잡스의 모습에 집중한다. 실패를 이겨내고 복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관객과 호흡하려면 오히려 복귀 이후의 성공과 죽음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주었어야 했고, 독창적인 영화를 탐냈다면 대학 이후의 이야기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스토리텔링했어야 했다.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은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잡스 전기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가 둘 다 얻지 못했다. 전기 영화, 참 어려운 장르다.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