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그 시간·공간 통과하면 그 사람이 된다

존재는 시공간과 분리되지 않는다. 어떤 활동과 관계도 시공간적 리듬과 함께 간다.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고미숙의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중에서)

그날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 및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세계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무렵이었다. 민족이니, 자유니 하는 대서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역사와 현실, 모순과 변혁으로 오로지 이야기되던 문학적 담론이 내면 심리의 묘사라든가 언어와 형식의 새로움, 미적 즐거움의 추구와 같은 새로운 덕목들로 이동하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문학을 요구했고 나는 그 혼란 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방황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교수님은 수많은 책 중에서 '열하일기'를 주시면서 논문을 하나 써 보라고 하셨다. 그것도 '일신수필' 부분을 꼬집어 주셨다. 시작은 늘 이렇게 우연하고 일상적이다. 그 만남이 내 삶의 운명적인 마주침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때 이후, 나는 진정 연암 박지원의 친구가 되었다.

그해 선배가 나를 불렀다. 어머님이 오랜 병마 끝에 돌아가시고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세상은 통합논술이라는 괴물로 떠들썩했다. 주입식 교육과 암기로만 익힌 지식을 객관식 정답으로만 확인하던 시대를 넘어 새로운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진통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선배는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방법을 물었다.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그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무언가를 썼다. 서울로, 부산으로, 광주로, 대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접속을 계속했다. 그것이 지금의 내 삶을 규정하게 된 것이 고맙다. 그때 이후, 나는 바닥으로부터 독서교육의 신봉자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 '時間'(시간)과 '空間'(공간)을 통과하면 '바로 그 人間'(사람)이 된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일상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면 그 시간과 공간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된다.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時와 空인 셈이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과 공간은 존재한다. 문제는 그 시간과 공간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구차하게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거나, 미혹하게 미래의 시간만을 무의미하게 꿈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감성적으로 과거의 공간에 침잠하거나 무모하게 미래의 공간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공간에 살아야 한다. 내가 이 시대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이 시대가 나에게 지시하는 그것을 최소한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 '바로 그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신기한 건 時間이든 空間이든 '사이'(間)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時와 空에 함몰되면 그것의 노예가 된다. 앞만 보고 걸어가거나, 위만 보고 올라가거나, 아니면 길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그 '사이'를 걸어가야 한다. 그래야 나와 세상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나와 세상의 거리도 볼 수가 있다.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악재들이 가로막고 있지만 그것들조차도 이젠 내 친구다. 그것도 또 하나의 時이자 空일 테니까.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니까.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작은 빛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작은 빛이 큰 빛으로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빛을 정책이라고 표현한다면 정책은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체질을 바꾸는 차원으로 다가가야 한다. 체질은 다시 그 시간과 공간을 절실하게 만나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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