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권한과 혜택은 실로 막강하고 넓다.
회기 중 불체포특권과 직무상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포함해 수백 가지나 된다. 1억 원을 훨씬 웃도는 연봉 외에도 보좌진, 입법 지원 경비, 차량 유지비, 가족 수당 및 자녀 학비 보조 수당, 항공'철도'선박 무료 이용, 65세 이상 죽을 때까지 연금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보좌진은 몇 명이나 될까. 공식적으로는 4급부터 9급까지 7명과 인턴 2명을 포함해 9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아니다. 국회의원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여기는 '특별 보좌진'이 있다. 대구경북을 비롯해 지역주의가 여전히 판치는 곳에서는 유권자보다 국회의원 눈치만 봐야 하는 특별한 보좌진들이 많다는 얘기다. 바로 공천을 무기로 수직, 주종 관계를 맺고 있는 같은 당 소속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다. 이들이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 국회의원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면 다음 공천을 받지 않거나, 선거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당정치의 산물인 공천제가 지역주의에 편승해 괴물로 바뀌면서 국회의원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 슈퍼 갑이 됐다. 지방자치를 실현해야 할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국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섬기는 구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기형적인 공천제이다.
내년 6'4 지방선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출마 예정자들은 추석을 앞두고 얼굴 알리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공천제 폐지에 미적대는 바람에 출마 예정자들은 절도 모르고 시주를 해야 할 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도 공천제 폐지 여부 등이 확정되지 않아 선거 일정 진행이나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는 모두 정당 공천제 폐지가 정치 개혁의 단초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 모두 공천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분위기로 말미암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완전히 뒤안길로 물러나는 듯했다.
가재는 물 마르면 돌 밑에서 기어 나오고, 너구리도 제 먹이를 뺏기면 굴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공천제 폐지에 저항하는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물밑 반발은 더 거센 것 같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먹혀드는 텃밭에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을 뺏길 수 없다는 모양새다.
"(공천을 하지 않으면) 시장, 군수들이 국회의원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공천 안 주는데 눈치 볼 게 뭐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은 광역의원밖에 없어요."
사석에서 털어놓은 지역 한 국회의원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 공천제 폐지 반대론의 온갖 명분보다 이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민주당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한 이상 우리도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라며 "공천제 폐지 반대론을 제기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펴본 뒤 기초의원은 내주고, 기초단체장 공천은 사수한다는 것이 복안"이라고 말했다.
'자치단체장 권력 비대' '지역 토호 세력의 지방의회 장악' '정치적 표현 자유 위배' 우려 등 공천제 폐지 반대론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다. 공천제를 유지하려는 온갖 논리는 국회의원이 '특별 보좌진'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꼼수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제 밥그릇에서 쌀 한 톨까지 챙기겠다는 심산이다.
지금까지의 여당 행태로 볼 때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1년도 안 돼 손바닥 뒤집듯 저버릴 공산이 크다. 수많은 특권 가운데 가장 내려놓기 싫은 달콤한 유혹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천이기 때문이다.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국회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 또다시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공천제 폐지는 정치 개혁의 단초이자, 지방분권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기초의원만 공천을 없애고, 단체장은 슬그머니 공천하는 꼼수를 부리다 민심을 모두 잃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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