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카톡' 끼어드는 시어머니, 며느리 상황 실시간 파악

스마트시대 맞아 '고부갈등' 새 양상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고부갈등(姑婦葛藤). 바퀴벌레와 함께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최근 고부갈등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보다 교묘해지고 복잡해졌다. 엄하고 모질기만 했던 시어머니는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절대 강자가 아니다. 며느리 역시 무조건 희생하고 순종하는 피해자가 아니다. 전선도 확대되고 있다. 시어머니는 물론 시할머니도 싸움에 뛰어들었다. SNS도 새로운 전쟁터로 떠올랐다. 시어머니들의 모임, 며느리들의 모임도 생겨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 숙지지 않는 '사랑과 전쟁'

안방극장에서는 매일같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 '사랑과 전쟁'이 치러진다.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는 막장 고부갈등의 진수가 펼쳐진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도 고부갈등을 보여줬다.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도 부부클리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부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또 채널A의 '웰컴 투 시월드'와 '동치미', JTBC의 '고부 스캔들'과 '대단한 시집'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출연해 서로 가슴 속에 쌓아온 불만과 요구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엄한 시어머니와 순종적인 며느리의 싸움이 아니다. 막상막하다. 시어머니를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시선의 드라마도 부쩍 늘었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어른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홀몸노인이 증가하는 사회현상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살벌하다. 기자가 포털사이트에서 '고부갈등'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관련 카페 글만 수백 건이 올라왔다. 해당 글 가운데 병환을 걱정하거나 선물관련 상담 등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시어머니와 갈등을 상담하는 며느리들의 글이었다. 이에 맞서 시어머니들의 하소연도 상당수 발견됐다. 때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끔찍한 사건'사고가 되고 한다. 지난달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살해해 시신을 정화조에 버린 혐의로 50대 며느리가 범행 5년여 만에 검거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이달 10일에는 시부모 봉양 문제로 가정불화를 겪던 30대 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날 대구에서도 가정불화로 인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올 초에는 50대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만삭의 며느리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갈등 수준을 넘어 가정을 깨는 가정파괴범(?)이다. 최근 한 결혼회사의 재혼상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가의 간섭과 갈등으로 인해 이혼했다는 비율이 17%에 달했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고부갈등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산문제 등이 얽혀 있는데다 가족 간 오래된 분노나 불만이 폭발되기 때문에 타인과의 폭력사건 등에 비해 지속적이고 폭력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고 했다.

◆ 전선확대…시할머니가 더 무서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에 시할머니도 뛰어들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시할머니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90세 시할머니를 모시게 된 40대 주부 김정화(가명) 씨는 시할머니 시집살이로 우울증에 걸렸다.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드려야 하는 것도 부담이고 빨래를 하는 것도 부담이다. 간혹 친구라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왜 그렇게 싸돌아 다니냐"고 꾸중을 듣기 일쑤다. 한 번은 점심 준비가 늦어져 졸지에 친척들로부터 시할머니 밥도 안 챙겨주는 못된 며느리란 소리를 들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에서 간혹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했던 남편도 무용지물. 밤마다 남편에게 하소연해보지만 남편도 할머니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김 씨는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젊은 당신이 참아'라는 말을 곱씹으며 오늘도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며느리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아니다. 며느리를 무서워하는 시어머니'시할머니도 늘고 있다. 직장 생활하는 젊은 며느리의 뒷바라지를 하는 시어머니들이 점차 늘면서 시어머니들 사이에서 '며느리살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20여 년간 맏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박점순(74'가명) 씨는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하루하루가 고되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까지 키워 대학까지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눈칫밥이다. 일하고 돌아온 며느리의 신경에 거슬릴까 봐 밤에는 아예 눈치껏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박 씨는 "19살에 시집와 젊은 시절 내내 고된 시집살이를 했는데 늙어서는 며느리살이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 딱히 갈 곳도 없으니 내색조차 못한다"고 한탄했다.

최성호 변호사는 "고부갈등이 각종 법적 문제로 비화되는 일이 종종 있다. 고부갈등은 외형적으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어머니의 노동 과부하, 며느리의 이중노동, 남편의 역할 부재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상속 등 경제적인 문제까지 포함돼 있어 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고부 갈등이 단순히 버려야 할 폐습이나 여자들만의 갈등이 아닌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 SNS, 신 고부갈등 진원지

고부갈등은 때와 장소를 가지리 않는다. 함께 살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탓이다.

맞벌이 주부 이진화(29) 씨는 최근 '카스'(카카오스토리)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가 경주에 사시는 시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세 살짜리 아들이 놀이터에서 다쳐 속상한 마음에 카스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가 '카스 친구'인 시어머니가 이를 보게 된 것. "애를 어떻게 돌봤길래 다치느냐"는 호통과 함께 "병원에는 데리고 갔느냐, 주말에 대구에 올라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씨는 "얼마 전 카스를 시작한 시어머니가 '친구 맺기'를 하자고 해 거절할 수도 없었다. 또 친구를 맺으면 고부간 소통도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감시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시어머니가 오해할까 봐 친구들과 커피 마신 사진도 못 올리겠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처럼 속앓이를 하는 며느리들이 늘고 있다. 과거 시어머니들은 자녀 집을 방문해 사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살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녀의 생활을 알 수 있게 됐다. 카톡'페이스북'카스 등 SNS을 사용하는 중'장년 여성들이 늘면서 만들어진 신 풍속도다. 고부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모바일 서비스의 속도만큼이나 갈등도 빠르게 확대된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며느리들은 일상을 감시당한다며 반발하고 시어머니들은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안 든다. 간혹, 며느리가 '친구 맺기'를 끊기라도 하면 섭섭하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시어머니 때문에 카스를 탈퇴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온다. '폐쇄형 SNS에 가입하라''휴대폰을 2대 사서 계정을 따로 만들라' '시어머니의 친구 신청은 무시하라' 등 대처법도 소개되고 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교수는 "노년층의 SNS 이용이 늘면서 오프라인 사회와 비슷해지고 있다. SNS에서 다양해지는 고부갈등과 세대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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