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파파게노 효과

구한말 고종은 단발령을 내리며 "짐이 상투를 잘라 신하와 백성에게 앞서노니, 너희들은 짐의 뜻을 헤아려 세상과 더불어 사는 대업을 이루게 하라"며 먼저 상투를 자르고 전 백성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그야말로 기절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부모님한테서 물려받은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훼손하는 것은 불효로 여길 만큼 중요시했는데, 그것을 어느 날 갑작스레 자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가 물려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불효막심한 일이라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관리도 있었고, 전국이 큰 난리가 난 것처럼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한다.

하물며 머리카락 자르는 것조차 큰 불효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목숨을 버리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는 1만4천160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28.1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43명, 33분마다 한 명꼴이다. 2위(일본 20.9명)을 크게 앞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압도적 1위다.

최근 자살예방법 '파파게노 효과'가 화제가 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는 새잡이꾼 파파게노가 등장하는데 사랑하는 여인이 사라지자 괴로운 나머지 목을 매려고 한다. 이때 요정들이 노래하는 희망의 이야기에 파파게노는 목을 매는 대신 종을 울려보라는 요정들의 말을 따라 종을 울리자, 다시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고 생명을 얻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후 이런 현상을 일컬어 파파게노 효과라고 한다. 파파게노와 달리 비극을 선택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작품이 발표된 뒤 유럽의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처럼 유명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베르테르는 죽음에 굴복했고, 파파게노는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베르테르만을 기억할 뿐,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온 파파게노는 잊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도 한때는 자살률이 높은 국가였지만 지금은 자살률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막을 방법을 고민하던 연구자들이 언론의 자살 보도를 자제하는 방법을 쓰자 자살률이 급격이 줄어들었다는 것. 이후 '자살 보도 권고안'을 주요 언론사에 설명했다고 한다. 미디어 권고 시행 후 자살자 수는 절반으로 떨어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04년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안'이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나뿐인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파파게노 효과'로서 우리도 자살률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기대해 본다.

구자일 구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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