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허수아비의 가을 강의

밤마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수면제를 먹지 않고서는 한잠도 자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과도한 노동으로 허리가 접히도록 허기진 이 친구, 허겁지겁 저녁밥을 배속으로 쓸어 넣은 뒤 소파에 비스듬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깜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이렇게 외치더랍니다. "어이쿠, 큰일 날 뻔했군.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잠을 자려 하다니!"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 세월이 얼마나 길었는지 몰라도 잠의 수렁에서 억지로 빠져나와 수면제를 찾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인간의 타성 또는 습관이라는 게 정말 힘이 강철인가 봅니다. 루쉰이 "중국에선 의자 하나를 옮기는 데도 조물주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절규했듯이, 어떤 이성적인 논리로도 습관의 리듬을 해체해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정관념이나 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네 삶을 지배해 가는지 그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 보이는 인도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 사람들이 산속의 수도사를 초대하여 그의 집도하에 저녁마다 신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녁 기도 시간만 되면 떠돌이 고양이가 나타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심하게 울어댔습니다. 그 고양이의 울음에 신경이 쓰여 마을 사람들이 명상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자 수도사는 기도 시간이 되면 그 고양이를 예배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올리브 나무에 묶어 놓게 하였습니다.

수도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늘 해오던 대로, 어김없이 고양이를 묶어놓고 기도를 올렸으며, 그 고양이마저 늙어 죽자 다른 고양이를 잡아와서 묶어 놓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 드리던 사람들이 모두 늙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은 후손들이 저녁 시간이 되면 또 어김없이 고양이를 묶어놓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묶어 놓았던 고양이도 죽고 다른 고양이조차 보이지 않자 후손들은 이웃 마을로 가서 고양이를 비싼 가격에 사다가 올리브 나무에 묶어놓은 다음에야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수도사의 유식한 제자들이 기도 시간의 전례 규범에 관한 연구서를 출간했는데 그 주제가 '저녁 기도를 올리는 시간에 고양이 한 마리를 올리브 나무에 묶어 두는 일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그 후, 더 많은 연구가 깊게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학파가 생겨났을 뿐 아니라, 고양이를 기도시간 30분 전에 묶어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1시간 전에 묶어 두어야 하는지, 고양이를 올리브 나무에 묶어야 하는지 물푸레나무에 묶어야 하는지, 노끈의 길이는 몇 미터가 적당한지 등을 두고 학파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관습 중 기도 행위의 진짜 주체는 과연 어느 쪽일까요?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이 이야기에 낄낄대다가 문득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몰골을 읽고서는 한없이 꿀꿀해지는 기분은 또 어쩌지요. 어쩌면 우리 인간은 관념이 만든 유령의 집에 세 들어서 그 집주인인 철근 같은 습관이나 차돌 같은 고정관념의 암묵적인 폭력에 멱살 잡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고, 수단과 목적이 뒤죽박죽이기에 일상은 늘 풀리지 않는 방정식처럼 분별이 어려운 모래바람 속인가 봅니다.

가을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금화교역(金火交易)을 음양오행론에서는 우주의 대혁명이라고 한다지요. 혁명이 무엇입니까? 헌법 철조망을 벗어나 국가의 근본을 망치질하는 일이지요. 기존의 것들을 과감하게 부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몸부림이지요.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 삶의 마디를 짓는 일이지요. 구만리 허공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발걸음 따라 만물이 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의 길목에 서서, 교통정리에 바쁜 허수아비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여름의 끝을 서운해 하는 나무와 풀들에게 혁명의 방식을 열강하고 있습니다. 참을 수 없이 진부한 일상을 낯설게 성찰해보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결별하라. 타성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초록의 무성함을 벗어라. 모든 길을 지워라. 풍찬노숙이면 어떠랴. 맨발로 걸어서 네 스스로에게 도착하라. 자정 너머의 들판에 굴러다니는 풀벌레 울음소리, 눈썹이 하얗도록 서리를 맞으라. 별이 빛나도록 공부하라. 의식과 무의식의 거리를 좁혀라. 청정하다는 건 잉여가 없는 것. 말과 행동, 명분과 실상, 형식과 내용 사이의 간극을 없애라. 일상의 행동과 사고가 고정관념이나 편견, 근거가 박약한 관습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는지, 날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라. 생각날 때마다 세수를 하라, 타성의, 관념의 때를 씻어라."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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