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끊어버리고 강제로 접안했더라면, 아니 그전에 배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겼더라면…."
15일 영일만항 앞바다에서 침몰한 쳉루호의 기관실 선원으로 근무하다 극적으로 살아난 양비요(56'중국) 씨는 "배를 버리고 선원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4일 오후 4시 30분쯤 쳉루호는 포항신항에서 철제 코일을 하역한 후 일본으로 가기 위해 출항했다. 하지만 26호 태풍 '위파'가 일본에 상륙할 것으로 알려지며 피항을 위해 영일만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다음 날인 15일 오전까지 영일만항 주변 해상은 무척 평온했던 까닭에 쳉루호는 방파제 바깥의 묘박지(무료 임시 정박지)에 대기했다. 사고는 15일 정오쯤 시작됐다.
포항지방해양항만청 관제실은 당시 쳉루호에 "당신들의 배가 이상하니 빨리 VTS구역(항만관제시스템 통제구역)으로 이동하라. 주묘(닻이 끌려 배가 휩쓸리는 상황) 중인 것 같다"는 교신을 수차례 보냈다. 경고를 무시하던 쳉루호는 2시간이 지나서야 배를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1시간 40여 분 동안 배를 바로 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쳉루호의 선장은 결국 오후 3시 40분쯤 포항항만청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때는 파도가 너무 심해져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맞바람에 배가 선회하며 양쪽에 내려두었던 닻줄이 서로 꼬여 다시 들어올릴 수도 없었다. 쳉루호의 3등 항해사 상효량(29'중국) 씨는 "초기에는 이토록 심각한 상황이 될지 몰랐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선내방송도 배가 부딪히고 난 후에야 들었다"면서 "태풍의 직접적 영향권 밖에 있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초동 대처가 너무 미흡했던 것 같다. 더욱이 쳉루호는 당시 화물이 전혀없는 공선 상태였기 때문에 무게가 가벼워 기상 악화에 더욱 약했을 것"이라며 "선박 하부에 물을 채워 무게를 늘리고 항만 안쪽으로 피신하는 등의 안전 조치가 왜 이뤄지지 못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쳉루호의 구조 활동에 중국 당국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중국주부산총영사관 학효비 총영사 일행은 18일 오후 포항해경을 방문해 감사를 표시할 계획이다. 학효비 총영사는 시신 인양 과정에서도 한국 해경의 정성어린 시신 처리에 깊은 감명을 표시했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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