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김형원(76'대구 동구 안심동) 씨의 생일이었다. 김 씨는 아내 임화순(73) 씨와 함께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챙겨준 생일떡으로 조촐하게 생일을 기념했다. 자녀가 있었다면 김 씨 부부를 모시고 생일잔치도 해 주고 정성이 담긴 생일선물도 줬겠지만 어찌 이리도 박복한지 축하해 줄 자식도 없다.
"이런 날이면 정말 자식 생각 많이 납니다. 어떻게 다들 부모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먼저 떠난 자식들
한국전쟁 직후 김 씨가 대구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시내버스 기사였다. 버스를 운전하면서 아내 임 씨를 만났고 이후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중 두 살이던 둘째 아들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 씨 부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은 자식들도 먼저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 씨는 셋째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난 1983년 여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셋째 아들이 스물아홉 살이었어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취직준비를 하던 중에 친구들이랑 합천댐 근처로 여행을 간다더군요. 불길한 예감에 '가지 마라'고 붙잡았는데 결국 가더니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김 씨는 셋째 아들을 잃은 충격에 생업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잊으려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다 시내버스 기사를 그만두고 25인승 미니버스 한 대를 사서 학원과 계약을 맺어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셋째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되던 중 IMF 외환위기가 몰아닥쳤다. 이때 큰아들이 사업에 실패,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렇게 행방불명이 된 큰아들은 지금도 연락이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고 의지했던 막내딸마저 지난해 11월 간암으로 김 씨 부부 곁을 떠나 버렸다.
◆성한 곳 없는 부부의 몸
자식들을 먼저 보낸 상심 때문인지 김 씨 부부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특히 김 씨의 건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김 씨는 14년 전 위암을 앓았었다. 셋째 아들을 잃고 난 뒤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건강이 나빠진 탓이다. 위암을 치료하기 위해 생계수단이었던 미니버스와 살던 집을 팔아 병원비로 썼다. 가진 기술이 운전밖에 없었던 데다 생계수단인 차도 팔아버렸고, 게다가 건강까지 나빠지면서 김 씨는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위암을 극복하고 나니 이번에는 간에 문제가 생겼다. 3년 전 쓸개에 담석이 생기더니 김 씨의 간은 급격히 나빠졌다. 2011년부터 앓기 시작한 담석증은 김 씨의 간을 점점 갉아먹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고주파치료를 받고 한 달에 4~6일씩 입원해 치료와 검사를 받고 있지만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허리도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왼쪽 다리와 허리 왼쪽이 자꾸 저려오더니 급기야는 핏줄도 튀어나오면서 통증이 몰려왔어요. 근처 정형외과를 가도 '큰 병원에 가서 진찰받는 게 낫겠다'는 말만 할 뿐 정확한 병명을 말해주지 않아요. 더 큰 병이면 어쩌나 걱정만 할 뿐이죠."
아내 임 씨도 관절염 때문에 고통이 심하다. 걸을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몰려온다는 임 씨는 2010년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비용이 없어 오른쪽 무릎은 구청의 긴급의료지원비를 받았고, 왼쪽 무릎은 친척과 지인에게 돈을 빌려 겨우 해결했다. 하지만 수술 후 관리를 제대로 못 한 탓에 왼쪽 무릎은 재수술해야 하는 상태다.
"아내는 수술을 받고 나서도 곧바로 폐지를 주우러 다녔어요. 수술을 받고 나면 좀 회복될 때까지 쉬어야 하는데 무리를 한 것이지요. 결국 아픈 무릎 때문에 더는 밥벌이도 못한다고 마음 아파하더군요."
◆병보다 더 무서운 병원비
집안의 장남인 김 씨는 제사조차 동생들에게 넘길 정도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김 씨에게 병원비는 병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김 씨 부부는 기초노령연금, 기초생활수급비, 국민연금 등을 합해 한 달에 64만원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다고 병원에 4~6일 입원할 때 나오는 병원비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고주파 치료나 CT, MRI 검사 등 김 씨가 받는 대부분의 치료와 검사는 비급여 항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병원비로 진 빚도 400만원이나 있다. 이때까지 병원비 계산은 전부 신용카드 할부로 처리했는데, 이 비용을 갚아나가는 데 힘이 부친다. 거기에다 병원비 때문에 일가친척들에게 빌린 돈도 적잖다.
"자꾸 형제들에게 돈을 빌리니 누가 좋아하나요. 이번 추석 때도 차마 동생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돈 문제는 둘째치고 맏이 노릇도 못하는 제가 면목이 없어서요."
아내 임 씨도 왼쪽 무릎을 재수술해야 하지만 비용이 없다. 임 씨는 "폐지라도 주우러 다니면 반찬 값이라도 나오는데 지금은 움직이는 것도 고통스러우니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너무 힘들다"고 했다.
김 씨 부부는 먼저 곁을 떠난 자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성당에 가서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떠난 자식들의 명복을 빌어주다 보면 가난하고 병든 현실이 주는 시름도 조금은 달래지기 때문이다. 두 부부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기 전에 큰아들이 살아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큰아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려고 올 추석 지나고 경찰서에 들렀던 적이 있어요. 경찰에서는 '이미 주민등록이 말소돼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죽기 전에 볼 수나 있을는지…."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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